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박수근(가운데 오른쪽) 위원장과 이승욱(가운데 왼쪽) 간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ILO핵심협약 비준관련 공익위원안 기자설명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박수근(가운데 오른쪽) 위원장과 이승욱(가운데 왼쪽) 간사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ILO핵심협약 비준관련 공익위원안 기자설명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규정한 제87호, 제98호에 가입(비준)할 것을 정부에 권고한다. 인권위는 제87호와 제98호가 우리 헌법에서 규정하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 내용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협약에 비준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이 거센데다 정치적 논쟁으로 번질 수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인권위 “한국, ILO 핵심협약 비준해야”

12일 인권위에 따르면 내년 ILO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단결권·단체교섭권을 규정한 제87호, 제98호에 비준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정부는 2010년 한-EU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노동기본권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ILO 핵심협약 비준을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며 “국제사회와의 약속과 우리나라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정부가 미가입 핵심협약 비준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내용이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 및 노동3권 보장과 다르지도 않다”면서 “협약 가입을 통해 다양한 노동인권 문제를 해소하고 헌법 가치도 수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1991년 ILO 152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ILO 전체 협약 189개 가운데 29개만 비준한 상태다. 특히 ILO 8개 핵심협약도 그 중 4개만 비준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87호와 98호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사진=시사위크
사진=시사위크

인권위는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 4개 중 87호와 98호 2개에 대해 우선적으로 비준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두 협약은 노동조합 등 단체 설립에 관한 자유와 결사의 자유, 자주적 단체운영과 활동,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 배제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 협약의 비준을 공약했고, 100대 국정과제인 ‘노동존중 사회 실현’에서도 해당 내용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 역시 4개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하라는 권고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결의안’ 또한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비준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재계 및 경영계에서는 87호와 98호를 비준할 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논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경영계 “기업활동 위축” vs 시민사회 “약속 지켜야”

경영계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 시 해직 근로자가 노조활동을 할 수 있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해직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할 경우 복직 투쟁이 빈번해져 사회적 비용만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87호와 98호를 비준할 시 가장 먼저 변화를 맞는 곳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다. 현행 교원노조법 제2조는 현직 교원만을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어, 2013년 고용부는 이를 근거로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또한 경영계에서는 2년을 초과할 수 없는 현행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직장 점거 형태의 파업 금지, 파업기간 대체근무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ILO에서는 파업기간 대체근로가 사실상 노동자의 파업권을 저해하는 만큼 협약에 위반된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공무원 노조법 제4조’와 ‘교원노조법 제3조’, 공무원노조의 가입범위를 제한하는 ‘공무원 노조법 제6조’,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과 이를 요구하는 쟁의를 금지한 노조법 제24조 제2항, 제5항, 제92조 제1호 등도 저촉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 ILO핵심협약 비준! 정부선행조치 이행촉구! 노동법 전면개정! 2018 총파업투쟁승리! 민주노총 대정부 시국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김명환(왼쪽 여섯 번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동법 개악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 ILO핵심협약 비준! 정부선행조치 이행촉구! 노동법 전면개정! 2018 총파업투쟁승리! 민주노총 대정부 시국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김명환(왼쪽 여섯 번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산별노조 위원장들이 ‘노동법 개악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인권위는 오히려 87호와 98호 협약을 비준할 시 노조활동에 따른 기업과의 법적 분쟁 여지가 제거돼 과도한 민형사상 책임 부과 등의 문제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애초에 정부가 그런 문제들을 모르고 공약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경영계의 반발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비준을 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그간 과거의 정부들 또한 비준을 하겠다고 약속만 하고 결국 시끄러워지면 국민정서 등을 명분으로 피하기만 했다. 이제는 그런 행태를 반복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면 공개적으로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면서 “분명한 것은 정부는 공약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만큼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