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4 20:27 (일)
[‘가보지 않은 여행기’ 정숭호] “문학과 여행의 만남, 영혼 마를 리 있나”
[‘가보지 않은 여행기’ 정숭호] “문학과 여행의 만남, 영혼 마를 리 있나”
  • 정소현 기자
  • 승인 2018.12.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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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정숭호(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인터뷰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칼럼니스트 정숭호(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씨는 책 제목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명색이 기자 출신인데, ‘팩트’가 아닌 ‘상상 여행기’라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고. 독자들을 속이는 것 같아 제목을 바꾸고 싶었지만, 상상과 희망이 있다면 가보지 않은 여행기도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 사진=김경희 기자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난 칼럼니스트 정숭호(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씨는 책 제목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명색이 기자 출신인데, ‘팩트’가 아닌 ‘상상 여행기’라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고. 독자들을 속이는 것 같아 제목을 바꾸고 싶었지만, 상상과 희망이 있다면 가보지 않은 여행기도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괴테는 왜 달밤에 두 명의 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 운하 건너 주데카로 갔을까.” “왜 마르케스는 카리브해를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곳, 현실과 마술이 섞여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을까.”

시작은 물음표였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그를 오대양 육대주 곳곳으로 안내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달 출간된 <가보지 않은 여행기>. 이름은 ‘여행기’지만, 실제 가본 적 없는 곳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맛집이지만 먹어본 적은 없는 곳’이랄까. 다소 ‘당돌한(?)’ 책의 저자인 칼럼니스트 정숭호 씨는 “여행의 시작은 상상과 희망 아니겠는가”라며 허허 웃어 보인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는 명작 속 명장면을 찾아 떠난 여행기다. 괴테, 카잔차키스, 톨스토이 등 거장들의 고전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을 소개한다. 여기에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감성을 더했다. 우측은 책에서 소개한 마운트 데저트의 풍경. / HMG퍼블리싱
'가보지 않은 여행기'는 명작 속 명장면을 찾아 떠난 여행기다. 괴테, 카잔차키스, 톨스토이 등 거장들의 고전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을 소개한다. 여기에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감성을 더했다. 우측은 책에서 소개한 마운트 데저트의 풍경. / HMG퍼블리싱

◇ ‘팩트’를 써야할 기자, ‘상상’을 쓰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는 명작 속 명장면을 찾아 떠난 여행기다. 괴테, 카잔차키스, 톨스토이 등 거장들의 고전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사와 장면을 소개한다. 하지만 단순한 ‘여행지 소개’는 아니다. 그곳의 지리적·역사적 소개에,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인문학적 감성을 더했다. 파묵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비애의 원천이 무엇인지, 심지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묘사에서도 열락보다 비애가 먼저 느껴지는 이유를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는 페리 선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따져보는 식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를 가장한 독후감’이자, ‘인문학 여행기’에 가깝다.

“이 책은 ‘아직 그곳에 그들의 숨결과 손길이 남아있을까? 변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에서 비롯된 상상과, ‘늦더라도 한번은 가보고 싶다’는 희망에서 시작됐다. 명색이 기자 출신인데 팩트에 맞지 않는 제목에 주저하기도 했지만, 상상과 희망이 있다면 가보지 않은 여행도 충분히 감동스러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그곳들의 풍광과 냄새와 소리는 내게 이미 익숙하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은 정숭호 씨가 '가보지 않은 여행기'를 쓰는 데 영감을 줬다. 베니스를 다시 간다면 괴테가 즐긴 것처럼 노래를 듣진 못하더라도 그 해변을 눈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더듬어 보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진=김경희 기자

그의 촉수를 자극한 건 ‘괴테’다.

1786년 10월 6일, 서른일곱 살의 괴테는 달빛을 받으며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 바로 앞 운하를 건너 주데카 섬으로 갔다. 곤돌라에는 두 명의 사공이 타고 있었다. 미성에 음량이 풍부하고 노련한 가수들이다. 해변에 내린 사공들은 괴테를 가운데 두고 서로 반대쪽으로 걸어가면서 한 소절 씩 노래를 불렀다. 교교(皎皎)한 달빛 아래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는 사공들의 노랫소리는 커졌다가 작아지고 또다시 커진다. 잔잔한 파도소리가 노래의 정취를 한껏 돋운다. (괴테 ‘이탈리아 여행’ 중)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짧은 순간, 혼자만의 깊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나도 한번은 꼭 같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내 남은 생애에서는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 소원까지 생겨났다.”

그렇게 떠난 상상 여행은 모두 15곳이다. 괴테, 파묵, 브로노우스키, 나보코프, 오웰, 위고, 유르스나르, 카잔차키스, 톨스토이, 톨킨…. 이들의 책이 가보지 않은 여행을 부추겼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에선 그리스 남쪽 에게해의 크레타 섬에서 출발, 북부의 이피루스 산맥 속 잘롱고 절벽을 올랐다. 잘롱고 절벽은 1830년 터키 군에게 쫓기던 그리스 여인 57명이 아기들을 먼저 절벽 아래로 던지고 뒤이어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슬픈 역사가 어린 곳이다.

망명 작가였던 나보코프와는 그가 젊을 때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그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함께 더듬었다. 나보코프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도 곁들였다.

‘인터뷰이’가 된 것은 처음이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면서 질문만 했지, 질문을 받아보지는 못했다. “긴장되고 어렵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 사진=김경희 기자
‘인터뷰이’가 된 것은 처음이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면서 질문만 했지, 질문을 받아보지는 못했다. “긴장되고 어렵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는 게 그의 소감이다. / 사진=김경희 기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선 총을 맞고 쓰러진 안드레이 공작의 눈에 비친 아우스터리츠의 하늘과, 1980년 봄 시위 취재를 하다 경찰의 곤봉에 맞고 쓰러진 자신의 눈에 비친 서울 하늘과 어떤 점이 비슷한지도 얘기한다.

위고는 왜 조국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레미제라블>을 썼는가를 생각하고, 쿤데라는 왜 자신의 대표작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불멸>을 꼽는지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풀어냈다.

◇ 그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자 출신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노련한 글솜씨 덕에 여행지는 실제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인문학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모여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신기하게도 독자들의 심장을 주무르고 온기를 뿜게 한다.

정숭호 씨는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정씨는 이 책이 그런 감성을 돕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 사진=김경희 기자
정숭호 씨는 “영혼이 메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더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정씨는 이 책이 그런 감성을 돕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 사진=김경희 기자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은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24년간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비판적인 글쓰기에 훈련이 된 그가 마음을 데우는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란다. 1년에 5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다.

“독서야말로 돈 안 드는 오락 아닌가(하하). 좋은 책 한권 고르면 그 이상의 즐거움이 없다. 책을 읽다 감동하면 그와 연관된 도서까지 읽게 되니 그보다 신나고 심장 뜨거워지는 일이 없다. 감히 소설이나 시를 쓰는 전업작가들의 아름다운 글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 이 책의 15개 챕터 중에서 설렘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영혼이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책을 읽고, 또 글을 쓴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래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갖 사건사고, 미담이 없는 신문. 모든 갈등은 한쪽만 보기 때문이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일깨워주는 글들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것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에 앞서 두 권(<목사가 미웠다>, <진실한 인간 진정한 지도자 트루먼>)의 책을 썼지만 정씨는 아직도 전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다.

다수 언론사에 연재 중인 칼럼을 모아 칼럼집을 내고픈 꿈이 있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와는 결이 전혀 다른 풍자칼럼이다. 인간적인 냄새 가득한, 그러면서도 톡톡 쏘는 조언이 뒤통수를 아리게 만드는 글들. 모으면 꽤 여러 권이 될 것 같다. ‘한국 풍자칼럼의 대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예순이 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정씨는 아직도 전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까지 3권의 책을 냈지만, 칼럼집을 비롯해 또 다른 여행기도 꿈꾸고 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정씨는 아직도 전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다. '가보지 않은 여행기'까지 3권의 책을 냈지만, 칼럼집을 비롯해 또 다른 여행기도 꿈꾸고 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이번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곳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고도 했다. 살만 루시디의 대표작 <광대 샬리마르>의 무대가 된 카슈미르, 지중해 연안의 섬 ‘피아노사’를 탈출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던 요사리안(조지프 헬러 <캐치-22>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이 벌써부터 그의 촉수를 스멀스멀 자극한다.

오는 21일엔 ‘북파티’도 연다. 글이 아닌 말로, 책의 에필로그를 독자들과 완성한다. ‘오감의 촉수로 세계를 독자의 품에 안기다’라는 부제처럼, 독자들을 위해 직접 인문학 여행 가이드에 나선다.

정씨는 꼭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돈키호테’를 꼽았다. 스페인의 라만차 마을, 시에나 모레나, 바라타리아 섬…. ‘돈키호테’에서는 또 어떤 여행을 떠나게 될까. 그의 가보지 않은 여행에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지는 건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그의 여행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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