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서울정부청사 별관에서 14일 오전 10시 30분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사진은 양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류근혁 연금정책국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이사장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정부의 국민연금제도 개편안이 베일을 벗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방안을 포함해 보험료율을 9~13%, 소득대체율을 40~50%로 조정하는 등의 총 4가지 안이 발표됐다. 최대한 국민 수렴을 거쳐 이번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이 인상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전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다 현행유지안까지 포함돼 개혁 추진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현행유지’하거나, ‘더 내고 더 받거나’ 

보건복지부는 서울정부청사 별관에서 14일 오전 10시 30분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 앞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의 발표가 당초 일정보다 늦게 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국민연금 시행령은 복지부가 5년마다 재정계산을 하고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그 해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개혁 특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회에 양해를 구하고, 이를 11월 말로 미뤘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초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일정이 더 늦어졌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최고 15%로 올리는 안을 냈다가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표는 문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복지부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제시한 안은 4가지다. 우선 1안은 ‘현행유지안’이다.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연금수령액의 비율) 40%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2021년에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리는 안이다. 올해 소득대체율은 45%이지만, 단계적으로 낮아져 2028년엔 40%로 낮아진다. 2안은 ‘기초연금 강화방안’이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기초연금을 2021년 30만원, 2022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3안과 4안은 ‘노후소득보장 강화방안’이다. 2021년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하되, 소득대체율 인상 수준에 따라 보험료율을 올리는 안이다. 즉 현재보다 보험료를 더 내는 대신, 급여액을 더 받는 방안인 셈이다. 3안은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고 보험료율도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올리는 안이다. 이 경우, 보험료율은 2031년 12%까지 올라간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리고, 보험료를 2021년부터 5년마다 1%포인트씩 2036년까지 13%로 인상한다.

박 장관은 4가지 안을 제시한 배경에 대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과 관련해 국민들의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이 있어, 하나의 통일된 안을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실현 가능성을 등을 고려해 여러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안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본인들이 선호하는 안이 다른 안과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어서 실질적으로 하나의 합리적인 안으로 귀결되는데 용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 마련에 있어 이전과 달리 국민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는데 공을 들였다.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주요 집단별 간담회, 대국민 토론회,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14일 정부가 발표한 종합운영계획안 추진 방안./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4가지 안 중 실질급여액이 가장 높은 것은 2안이다. 평균 월 소득이 250만원인 가입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더해 총 101만7,000원을 받는다. 같은 기준으로 실질급여액은 1안 86만7,000원, 3안 91만9,000원 4안 97만1,000원이다. 이에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 “국민들 입장에선 보험료를 따로 더 내지 않아도 급여액이 늘어나는 2안이 자연스럽게 선호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 노후소득보장에 방점… 재정안정화 방안 부실 도마위 

이에 대해 박 장관은 “그렇게 예상하지 않는다”며 “현 제도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상당수고, 합리적으로 보험료를 높이면서 동시에 소득보장도 강화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금 고갈 문제를 고려하면 현행유지 방안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1안과 2안을 유지할 경우, 기금고갈 추산 시점은 2057년이다. 3안과 4안의 경우, 이보다 고갈 시점이 5~6년 더 길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기금이 바닥이 나지 않으려면 보험료 인상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4가지 개편안이 제시되면서,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국민 눈치를 보다가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여러가지 안을 나열하며 국민들에게 폭탄을 던지고 있고 제시된 안들도 핵심은 빠진 속 빈 강정에 불과한 안들만을 제시했다”고 꼬집었다. 가장 핵심인 기금고갈 개선방안이 담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단일한 안을 제시하지 않고 무려 4가지 안을 제시해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고 세대간 갈등만을 조장하고 있다”며 “정부가 단일한 안을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토론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도 “속 빈 개혁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이번 개편안에서 재정안정화 방안은 다소 후순위로 밀린 모양새다. 정부는 국민노후소득보장과 재정안정성의 균형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이번 안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기금 고갈에 대비할 구체적인 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안 중 보험료율이 높아지는 안이 있지만 동시에 소득대체율도 높아지는 만큼 재정부담은 여전하다.

기금운용 강화 방안도 다소 빈약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기금운용의 수익률을 재정추계 수익률(평균 4.5%)보다 높이겠다는 것이 그마나 눈길을 끌 뿐이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을 올해 말 제출할 예정이다. 계획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국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나 별도의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합의안을 마련한 뒤 여야 합의를 거쳐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개편안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각계 각층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합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보험료율 조정 외에도 다양한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급보장 명문화’를 비롯해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지역가입자(납부예외자)의 보험료 지원, 출산크레딧 지원강화, 유족연금 중복지급률 상향, 이혼배우자 수급권 강화, 사망일시금 최소금액 보장 등이 제시됐다.

한편 오늘 발표는 사전 예고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전날까지도 언론에 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복지부는 당일 아침에야 기자단에 일정을 공지했다. 이는 앞서 개편안이 사전에 알려지면서 혼란이 불거졌던 것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앞서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추계 결과, 연금개혁 자문안, 복지부 초안 등이 사전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관련 실무자들은 초안 유출 의혹을 받고 청와대 감찰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이날 “지난번 대통령 보고 때 언론 보도가 되면서 국민들께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면서 기습 발표 배경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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