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변호사의 판사 재임용 탈락 과정 및 취소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 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변호사의 판사 재임용 탈락 과정 및 취소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서기호 변호사는 법관 블랙리스트 1호 피해자로 불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인 2012년 2월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SNS 게시글 심의부서 발족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등 윗선에 밉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카의 빅엿’으로 풍자한 게 결정적이었다. 판사직에서 물러난 그는 19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재임용 탈락불복소송을 냈으나 2017년 3월 최종 패소했다.

사건의 장막은 최근에서야 걷어지고 있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서기호 변호사의 연임 심사는 물론 행정소송 대응 전략까지 준비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이 확보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의 ‘연임적격 심사 관련 대응방안’, ‘연임심사 이후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소명절차 전·후에는 원론적 대응 수준으로만 한다’거나 ‘판사들 선동과 행동을 촉구하는 법원 내부게시판 글은 삭제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됐다.

서기호 변호사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법원행정처는 서기호 변호사의 행정소송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재판부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하는 방안을 고려한데 이어 ‘변론종결 등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판은 문건대로 진행됐다. 문건에서 말한 그날(2015년 7월2일) 변론이 종결됐고, 한 달 뒤 서울행정법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기호 변호사는 속속 밝혀지는 검찰 수사 결과에 참담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소명 절차가 남은 시점에서 이미 재임용 탈락을 기정사실로 했고, 행정처는 파장을 예상하면서 이를 최소화하는 대응책 마련에만 골몰했다”면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재판개입을 계획하고, 이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에서 서기호 변호사의 판사 재임용에 대한 고의 탈락 여부를 계속 수사 중이다. 서기호 변호사를 참고인 조사한데 이어 당시 사법정책실장이었던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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