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코리아 상담사들로 구성된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이 사측의 조합원에 대한 부당전직 및 교섭해태 등을 고발하고 나섰다. /뉴시스
애플코리아 상담사들로 구성된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이 사측의 조합원에 대한 부당전직 및 교섭해태 등을 고발하고 나섰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우리 마트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법을 어길까요.”
“한국에선 그래도 돼.” -웹툰 <송곳>

드라마로도 방영된 웹툰 ‘송곳’의 한 대사다.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인 주인공의 질문에 노무사는 “한국에선 그래도 된다”고 말했다. 기업이 법을 어겨도, 특히 노동법을 어겨도 처벌도 받지 않고, 손해도 보지 않는다는 것. 단순히 한국인을 무시하는 프랑스 기업과 프랑스인 점장의 태도 문제로만 볼 수 없었던, 상대가 외국 기업이 아니더라도 반박하기 힘들었던 대답이었다.

노사 관계는 좀 더 복잡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례가 현재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애플코리아 콜센터 상담사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부당한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올 여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하지만 상담사들이 소속된 사측(콘센트릭스코리아)은 별안간 노조의 명칭부터 트집을 잡았다. ‘애플’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 국내에서도 하청업에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시 무시로 일관하는 기업들이 많지만, 노조의 이름까지 간섭하는 곳은 원칭 기업도, 하청 기업도 없었다.

마치 애플코리아를 대신해 “당신들은 애플에 소속 될 수 없다”며 엄포를 놓던 사측은 최근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까지 내렸다. 상담사들은 해당 징계가 사실상 노조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전에도 사측의 황당한 요구는 계속 있었다. 국내 여론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해외 기업이 본사라는 상황과 비정규 노동자라는 상황까지 겹친 애플 상담사들은 노조 결성 5개월 만에 인권침해 피해까지 호소하게 됐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삼성동 애플코리아 본사 앞에서 애플케어상담사 부당전직 철회, 성실교섭 촉구, 애플코리아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삼성동 애플코리아 본사 앞에서 애플케어상담사 부당전직 철회, 성실교섭 촉구, 애플코리아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교섭 일방적 취소에 비밀서약 서명 강요까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아이튠즈앱결제 등 애플 모든 제품의 고객 상담을 하는 상담사들이 애플코리아의 노조탄압을 고발하고 나섰다. 지난 8월 6일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을 결성한 상담사들은 콘센트릭스서비스코리아 소속이지만 애플 제품만을 전담하는 콜센터 노동자다. 근무조건과 업무 내용, 고용 여부가 애플코리아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담사들은 출근 후 퇴근 때까지 화장실과 물을 마시는 것조차 업무 시간 중 30분 동안 해결해야 한다. 점심 식사도 장소가 없어 사무실 밖 의자나 계단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상담사들은 목이 아파도 웬만하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고용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항시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한 상담사들은 지난 8월 28일 사측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지만 열릴 듯한 교섭은 번번히 취소됐다. 노조는 사측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자 9월 2일 공고 촉구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자 이틀 뒤 회신을 한 사측은 난데없이 노조의 명칭 변경과 조합원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노조 이름에 ‘애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
 
상담사들은 조합원 명단 제출 요구를 거부했고, 그 달 28일 2차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이때부터 사측의 교섭 방해는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10월 1일 교섭 연기 요청, 10월 8일 2차 교섭 연기 요청, 10월 19일 교섭 당일 3차 교섭 연기 요청을 했던 사측은 10월 26일 처음으로 노조와 대면했다. 교섭 요구 2개월 만이었다.

형식적인 상견례로 1차 교섭을 마친 사측은 그달 말 갑자기 콜센터 상담사 전원에게 비밀정보보호 서약서 서명을 요구했다. 해당 내용은 고객(애플코리아)에 대한 일체의 모든 정보와 업무 내용 등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노조 측은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애플코리아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고발하던 때였다.

서약서 내용을 어기는 것은 물론 애초에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상담사들에게는 자유롭지 못했다. 서명을 거부한 조합원 간부 4명에 대해 사축은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11월 12일부터 30일까지 대기발령을 받은 4명은 출근 후 서약서 내용을 반복해서 읽으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코리아가 상담사들에게 서명을 요구했던 서약서 내용 일부. 고객(애플코리어)의 정보 및 업무는 물론 일체의 정보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내용이 골자다.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
콘센트릭스코리아가 상담사들에게 서명을 요구했던 서약서 내용 일부. 고객(애플코리어)의 정보 및 업무는 물론 일체의 정보를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내용이 골자다. /애플케어상담사노동조합

상담사들은 “대기발령 조치를 당한 상담사들은 옆 사람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면서 “징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음에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사실상 징계와 다를 바 없는 상담 업무 및 전직 조치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 기간 동안 사측은 노조와 2차, 3차 본교섭을 열었다. 하지만 쟁점 논의 사항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4차 교섭 이후 교섭이 결렬된 상태다. 그 사이 징계위에 회부된 상담사들은 이달 3일부터 업무배제가 확정, 격리조치를 당했다.

상담사들은 “어렵게 시작한 교섭도 4회 만에 사측의 교섭해태로 결렬됐다. 사실상 교섭의 결정권이 애플코리아에 있는만큼 애플코리아는 노조와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면서 “애플코리아는 조합원에 대한 부당전직 철회, 교섭 이행, 처우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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