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오래된 난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추정치에 따르면, 하루 평균 낙태를 하는 여성은 3,000명에 달한다. 낙태가 대부분 음지에서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낙태죄’는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출산은 국가가 정책으로 관리할 만큼 개인과 사회가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낙태는 그 어떤 문제보다 우리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낙태죄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후 진행될 논의를 가늠해볼 수 있다. / 뉴시스·AP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후 진행될 논의를 가늠해볼 수 있다. / 뉴시스·AP

[시사위크=은진 기자] ‘낙태죄’를 구성하는 형법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조항의 위헌 여부는 해를 넘겨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후보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폐지 헌법소원을 연내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6년 전 위헌 의견과 합헌 의견이 4:4 동수로 나타났다는 점과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이번에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헌재가 낙태죄 위헌 결정을 내리면 국회는 관련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낙태죄 폐지’가 임신중단 합법화 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인 이유다. 미성년자가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둘지,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단 규제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임신중단의 기본 절차는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등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논의돼야 할 의제는 다양하다.

①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기간은 언제까지?

임부의 요청에 따라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국가의 사례를 보면, 임신 주수에 따라 규제를 달리하는 안이 가장 일반적이다. 임신 초기-중기-후기로 나누는 ‘3분기’ 방식이다. 초기-중기-후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나라별로 다르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채택하고 있는 12주를 기준으로 임신 초기와 중기를 나누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다만 의료기술이 발달한 나라의 경우 임신 주수가 더 되더라도 안전한 중절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간 기준을 확대할 여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기준으로 분류한다면 임신 초기는 12주 이내, 중기는 12주 이후 24주 미만으로 나눌 수 있고 24주 이후는 임신 후기로 본다.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초기에는 임부의 요청만으로 가능하게 하고 중기에는 허용 사유를 제한적으로 두되 후기에는 허용 기준을 엄격하게 하거나, 아예 허용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역시 우리나라에서 임신중단이 합법화된다면 이 같은 방식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임신 초기에는 여성의 요청에 의해 시술 및 약물 처방을 할 수 있게 하고, 중기에는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시술을 할 수 있다”며 ▲적당한 시설과 산부인과 전문의 및 마취과 전문의 상주 여부 ▲태아 또는 산모 측의 의료적 사유 ▲사회·경제적 사유를 ‘제한 요건’으로 제안했다.

24주 이후 임신중절수술을 할 경우 ‘임신중단’이 아닌 ‘출산’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산모의 생명과 건강 위험으로 임신을 지속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윤리위원회와 같은 기구에서 임신 후기 임부의 임신중단 사유를 심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고 이사는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토론회’ 발제에서 “24주 이후에 태아가 분만될 때 호흡과 심장박동이 살아있는 경우에는 출산으로 봐야 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자가 호흡’을 하는 아이가 나왔을 때는 심폐소생술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 경우 (임신중단) 적용 사유에 대한 심사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조심스럽게 해본다”고 언급했다.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있는 국가에서 진행한 2017년 연구에 따르면, 정규 의료기관에서 처방 받은 임신중절약과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임신중절약은 비슷한 안전성과 효과를 보였다. / 뉴시스·AP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있는 국가에서 진행한 2017년 연구에 따르면, 정규 의료기관에서 처방 받은 임신중절약과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임신중절약은 비슷한 안전성과 효과를 보였다. 사진은 외국에서 유통되는 경구용 임신중절 약. / 뉴시스·AP

② 보호자 동의 없어도 미성년자의 임신중단을 허용할 것인가?

미성년자의 자기결정권도 쟁점이다. 미성년자가 임신중단을 요청할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허용 요건으로 둘지 여부다. 현재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이기 때문에 명시적인 조항이 없다. 법이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에도 의사나 지원기관이 임의적으로 부모 동반을 요구해 미성년자가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낙태죄 폐지 이후에는 관련 조항을 명시적으로 둘 필요성이 제기된다.

임신중단 합법화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수술과 관련한 의무 조항을 명시한 현행 ‘의료법’을 기준으로 미성년자의 임신중절수술 절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에 맞춰 임부의 연령과 무관하게 임신중단 결정권을 부여하거나, 현실적으로 미성년자에게 보호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의료 상황이 보편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연령 기준을 정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임신중단 결정권을 부여하는 연령 기준이 대체로 낮은 편이다. 영국은 16세 미만의 임부에게는 보호자 동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임부가 보호자 동의를 원하지 않는다면 임부의 임신중단에 대해 2명의 의사가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할 경우 보호자 동의를 받지 않아도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 스페인은 16세의 임부가 임신중단을 원할 경우 본인의 의사만으로 가능하지만, 임부의 결정에 따라 부모·후견인·법적대리인 중 1명에게 임신중단 여부를 고지해야 한다.

③ 임신중단의 기본적 절차

합법적인 임신중단이 가능하다면,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이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도 필요해진다. 네덜란드·독일·벨기에·이탈리아·프랑스 등에서는 여성이 계획하지 않은 임신을 확인했을 때 임신중단과 출산·양육의 가능성 사이에서 충분히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경심 이사의 제안에 따르면, 임신 및 임신중단에 따르는 신체적 변화와 합병증, 피임방법에 대한 상담을 온라인과 전화로 할 수 있는 기관을 각 보건소·보건지소·성폭력상담소 등 기관 산하에 설치하는 방안이 있다. 특히 성폭력 생존자와 미성년자, 정신지체 여성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전문가 상담기관의 접근성을 높이는 점이 중요하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이 고비용이라면 저소득층 여성과 미성년자의 접근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건강보험과 공공재정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공공기관 및 정부가 비용을 제공하거나 건강보험이 적용돼 임신중절수술을 무료로 할 수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 등 34개 국에 달한다. 미국도 19개주에서 ‘오바마 케어’(Obama-care)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행 의료보험체계의 수가체계에 따라 임신중단 약물 및 수술 비용을 적용하는 논의가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신중단권의 확보를 위한 법 개정은 국가가 허용하는 임신중단 사유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임신한 여성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형법 또는 모자보건법이 어떤 방식으로 개정되더라도 임신한 여성의 결정권을 인정하고 안전한 임신중단을 지원한다는 점이 기준이 되어야만 지금의 법 개정 논의는 비로소 유의미할 수 있다. 낙태법 개정은 임신중단권 확보의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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