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일대 제화공들이 홈쇼핑과 백화점의 과도한 판매 수수료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뉴시스
서울 성수동 일대 제화공들이 홈쇼핑과 백화점의 과도한 판매 수수료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구두회사와 도급 계약을 맺은 제화공들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계약 형식은 개인사업자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구두회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장소와 업무량에 맞춰 일을 했다면 근로자라는 취지다. 하지만 제화공들은 대형 유통업체의 과도한 수수료율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는 구두회사 ‘소다’와 도급 계약을 맺고 일한 고모 씨 등 1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구두회사들은 제화공들과 도급 계약을 맺고 제화공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됐다. 실제 업무는 구두 회사 직원과 마찬가지이지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4대보험은 물론 유급 휴가와 퇴직금도 받을 수 없었다.

이에 올 여름 또 다른 구두회사 ‘텐디’ 제화공들이 파업에 돌입, 16일간 본사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 괄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텐디 제화공들은 8년간 동결됐던 공임료 인상을 끌어냈고, 더 나아가 4대보험 가입·퇴직금 지급(세라제화), 퇴직연금 지급(고세제) 합의를 이룬 곳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 성수동 일대 제화공들이 소속된 30여개 구두회사 대부분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제화공들은 홈쇼핑과 백화점의 높은 판매 수수료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법원 판결 다음날인 21일, 제화공들이 다시 모여 판매 수수료 인하를 촉구했다.

사진자료=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사진자료=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공 처우개선, 홈쇼핑·백화점 수수료 인하돼야”

제화공들은 21일 오후 서울 성수동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백화점과 홈쇼핑의 판매 수수료 인하를 촉구했다. 지난 18일 공정거래위원회도 판매 수수료율이 29.8%에 달하는 4대 홈쇼핑에 대해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혀, 제화공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날 제화공들은 “홈쇼핑은 재고 부담을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것은 물론 유통 수수료도 최대 41%나 된다”면서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홈쇼핑이 가져가는 구조다. 백화점과 홈쇼핑의 수수료가 올라갈수록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제화공들에 따르면 구두 한 켤레 소비자 가격이 30만원일 경우, 백화점의 경우 유통 수수료 38%, 11만원 이상을 가져간다. 나머지 18만~19만원의 수익 중 14만~15만원은 구두회사인 원청 몫이다. 제화공들은 4만~5만원을 받고 공장운영비와 구두 원자재 구매 등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20% 초반대의 백화점 수수료가 38%까지 올라가는 동안 제화공들의 공임비는 수년간 동결되거나 오히려 낮아졌다”면서 “대법원에서 퇴직금 지급 판결을 내렸음에도 구두회사는 백화점 수수료가 너무 높아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결대로 제화공들이 노동자라면 퇴직금은 물론 4대보험도 가입해야 한다”면서 “대형 유통매장 및 업체의 높은 수수료율이 인하돼야 제화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소사장제 폐지와 진정한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제화공들은 오후 2시에 열린 기자회견이 끝난 후 오후 4시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제화공들은 이날을 시작으로 홈쇼핑·백화점 수수료 인하 운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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