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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바꾸는 사람들⑩ 고은지]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 문제해결의 시작” 
[대한민국을 바꾸는 사람들⑩ 고은지]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 문제해결의 시작”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8.12.24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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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19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센터에서 만난 고은지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 이슈가 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점은 고무적"이라는 시각을 보였다./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난민 이슈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구나. 그것을 우리 사회가 인식하게 된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난민 문제가 이슈화됐던 배경과 그 속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때다.”

고은지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 사무국장은 올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난민 이슈’를 이렇게 되돌아봤다. 난민 문제는 올해 예멘 국민 500여명이 제주도에 대거 입국해 난민신청을 하면서 이슈로 떠올랐다. 이들의 난민수용 여부를 놓고 한국 사회에선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이 과정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뉴스까지 범람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냈을 고 사무국장을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난민 이슈 ‘남의 나라 이야기’ 아니다" 

"어린 시절 겪은 정체성 혼란과 배제는 난민 이슈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고은지 사무국장은 설명했다./사진=김경희 기자

“난민 문제에 관심 가져주셔서 오히려 감사하죠.”

고 사무국장은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하다는 기자의 말에 되레 고마움을 표했다.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는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2009년 설립된 시민단체다. 난센이 결성되기 전, 난민만을 위한 단체는 전무했다고 한다. 1994년 4월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해 다양한 국가에서 난민들이 조금씩 국내에 유입되고 있었으나, ‘난민 이슈’는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주변부에 그쳤다. 하지만 2001년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오고 이후 인권 침해 문제가 드러나면서 시민사회 안팎에서도 ‘문제 의식’이 자라났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인권 관련 시민단체 쪽에서 먼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난민 제도가 도입된 후 초기에는 이주 노동자분들의 신청이 많았다. 본국의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위협을 받아서다. 자연스럽게 이주진영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나 시민활동가 분들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나 제도적 문제점을 발견해냈다. 이런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결성된 것이 난민인권센터였다.” 

고 사무국장은 2012년부터 난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고 사무국장은 어린 시절 겪은 ‘정체성 혼란’과 ‘차별 경험’에 대한 얘기부터 털어놨다. 고 사무국장은 일본에서 태어나 7살까지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전 어디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어린시절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고, 한국에서는 ‘일본인’라고 탐탁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잘 못했다. 그러다보니 또래집단에선 ‘얘는 일본애’라는 시선을 받았다. 스스로 정체성을 알아가기도 전에, 외부의 시선이 멋대로 특정한 틀에 정체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겪은 정체성 혼돈, 차별, 배제의 상황이 아픈 상처로 남았다.”

◇ 차별의 경험, 난민 이슈와 만나다 

고 사무국장은 성인이 된 후,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자 했다. 티베트 난민을 만나면서, 난민 이슈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이방인에 대한 배제가 제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티베트 난민을 만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티베트 난민이라는 이유로 중국 공안으로부터 박해받고 있었다. 중국은 점령을 위해 이들을 척결했을 수 있겠지만, 제게는 이 문제가 정체성의 이슈로 다가왔다. 종교와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왜 박해받아야 하는가. 차별을 양산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출발점이 됐다.”

그러다 국내 난민 이슈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고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고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난민 이슈는 다른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한때 봉사활동을 했던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이 김포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구나’라는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계기”라고 털어놓았다. 비슷한 시기 난센이 출범하면서, 관심은 구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시작은 소양쌓기부터였다. 고 사무국장은 “난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난민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와 준비를 다양하게 했다”며 “언어공부도 하고, 자원봉사도 했다”고 말했다. 시민활동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2012년부터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고 사무국장은 “무관심”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난센이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가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다’였다. 난민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없었다. 무관심 속에서 무수한 인권침해가 일어났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행정당국도 마찬가지다. 법무부 난민과에서 심사를 제대로 해달라고 요구해도 소수 이슈로 취급받았다.” 

고은지 사무국장은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동안 정부는 이를 바로잡을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꼬집었다./사진=김경희 기자

이런 기류에 올해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난민 이슈가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제주도에 561명의 예멘난민들이 입국하면서 ‘난민이슈’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됐다. 이들의 난민 인정을 놓고 사회적인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일었다. 반대파에선 이들을 가짜 난민이라고 규정하며 시위까지 벌였다. 이주인권단체들은 난민 인권 보장 촉구 집회를 열며 맞섰다. 온라인상에서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가짜뉴스, 혐오 발언이 퍼지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 가짜뉴스가 불러온 혼란  

고 사무국장은 “올해 예멘 난민 문제로 난민 이슈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국내의 이슈라고 체감하게 된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난민의제가 퍼졌던 주요한 수단이 ‘가짜뉴스’였다는 점에 씁쓸한 기색을 보였다.

“많은 시민들이 난민 의제를 가짜뉴스를 통해서 1차로 접했고, 사회적 혼란이 크게 야기됐다. 우리는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본다.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고 있는데 수수방관했다.” 

최근 예멘 난민 신청자에 대한 최종 심의 결과가 나왔다. 484명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41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가 겨우 인정됐다. 56명은 단순 불인정 결정됐다. 국내 난민법이 생긴 뒤 올해 5월말까지 4만여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난민인정자는 800명, 국내 난민 인정률은 고작 4%대다. 난민신청자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인정률은 박한 수준이다. 고 사무국장은 “행정 자원의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심사를 진행하는 행정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무부 난민과 심사관은 올해 기준으로 39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 사람의 난민을 심사하는데만 해도 최소한 하루가 걸린다. 15장 짜리 난민신청서와 증거 자료 검토, 인터뷰까지 거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심사 구조를 보면 하루에 두명 정도를 심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이 없다보니 제대로된 심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턱없이 부족한 행정 인력과 허술한 심사 시스템이 난민인정률은 더욱 낮게 만들고 있다는 게 고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사진=김경희 기자

깐깐한 심사를 거쳐 어렵게 난민을 인정받아도 문제다. 난민 인정자에게 제대로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혜택을 못 누리는 이들이 수두룩해서다.

“정부는 난민지위 인정 받으면 F2 비자를 발급한다. 그리고 A4용지 두장 짜리 안내문을 준다. 난민 인정을 받으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 준하는 정도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난민인정자들이 상당하다. 영어와 한글로만 적혀있어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다 신청 방법에 대한 명확한 안내도 없어 대부분이 혜택이 있어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난센이 난민인정자 11명을 대상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제도를 인지하고 있는지 설문한 결과, 단 한 명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고 사무국장은 “난민인정자인데도 노숙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며 “이런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는 어떨까. 이들은 더 궁핍한 환경에 놓여있을 터. 고 사무국장은 한 난민이 한 말을 떠올렸다.

“어린 아이를 두 명 둔 한부모 가정이었다.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모텔에 두고 고강도 노동을 했다. 그 분이 ‘본국에서 박해나 고문을 받아서 힘들었던 것보다 한국에서 살면서 더 큰 단절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꼈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삶. 고 사무국장은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 국가라는 타이틀을 자랑해온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이 남용적 난민신청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데에도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고 사무국장은 “심사 시스템을 철저하게 만들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며 “턱없이 적은 행정 인력으로 난민 심사를 하고, 난민들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니 재신청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심사 시스템부터 강화해야"

고 사무국장은 호주의 난민 심사 시스템을 일례로 들었다. 고 사무국장은 “호주는 1차 심사 거부 판정을 받으면 불허 사유가 200페이지로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A4 반쪽짜리가 전부”라며 “난민 신청자 입장에선 불허 사유를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니 계속 신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민 이슈를 해결할려면 제대로 심사 시스템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난민 이슈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이주민 전체 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기회에 이주민 정책을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 또 난민 문제는 법무부 난민과 소관이 아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가 연계해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난민 이슈는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라는 게 고은지 사무국장이 생각이다.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다./사진=김경희 기자

제도 개선을 위해 난센은 시끄럽게 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 고 사무국장은 “난민법 개악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이 어떤 문제를 낳을지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 사무국장은 “난민을 인도주의적인 관점으로만 난민 문제를 접근한다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시혜적인 대상이 아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난민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난민 이슈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의미를 되새겼다.

“난민 이슈는 기본적으로 인권의 이슈다.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난민 이슈를 방치한다면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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