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의 모습. / 뉴시스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의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가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지만, 세부조항을 놓고 여야 의견이 갈리면서 상임위원회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방치돼있었던 법안이다. 하지만 산안법이 올해 마지막 본회의에서 속전속결로 처리된 데에는 ‘주고받기’식 타협이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요구했던 대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오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기로 했다.

27일 오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이 주장해온 운영위 소집에 강한 반대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와 관련한 의혹을 따져묻기 위한 운영위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전 정부에서도 국정감사는 물론 상임위에 출석한 적 없다는 ‘불출석 관행’도 명분이었다.

운영위원장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지금은 운영위를 열어 정쟁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오직 범법자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의 폭로에 기초해 국회를 정략적인 정쟁의 장으로 만드는 것 외에 운영위원회를 열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민주당으로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운영위 소집으로 물타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용균법’(산안법)의 연내 국회통과를 위해서라면 조국 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참석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지면서 국회 기류가 바뀌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과의 티타임에서 국회 상황을 보고받은 뒤 “지금이라도 내 뜻을 전해 달라”고 했고, 한병도 정무수석이 곧장 홍 원내대표와 통화해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산안법 등 민생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기 위한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홍 원내대표는 28일 오전 당 회의에서 “사실 이번 청와대 특감반원 사건은 현 단계에서 국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치 공세로 규정하고 반대를 했지만, 산안법을 비롯한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서 문 대통령과 당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불가피하게 운영위가 소집되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수석이 출석하지만, 더 이상의 거짓주장에 놀아나는 국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오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 뉴시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오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 뉴시스

◇ 한국당, 운영위 ‘총공세’ 예고

여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와 태안화력발전소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故) 김용균 씨 등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안법 처리가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다. 이 법안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은)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김용균법’ 처리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때문에 김 씨의 유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안법을 처리해낸 것은 분명한 성과라는 평가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국 수석이 운영위에 출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오직 민생법안의 처리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본다”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푸는 태도고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국민과 뜻을 함께 하는 것, 이것이 이 정부 국정운영의 기본 틀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단, 조 수석의 국회 출석으로 야당의 거센 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여당으로서 부담이다. 한국당은 운영위 위원 사보임 절차를 거쳐 당내 ‘청와대 특감반 의혹 진상조사단’ 소속 의원들을 운영위에 투입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대여 공세에 힘을 싣고 있다. 홍 원내대표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방어는 가능하지만 한국당의 폭로 수위에 따라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은 31일 운영위가 청와대 특감반 사태의 확전 기제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다. 홍 원내대표는 “(청와대 특감반) 사건의 본질은 너무나 명확하다. 김태우라는 파렴치한 범죄 혐의자가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이런 사람의 이야기에 춤을 추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광온 최고위원도 “한국당이 비위수사관의 악의적인 또는 아주 선택적인, 아주 무차별적인 폭로의 동기를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이를 악용하고 있어서 대단히 안타깝다”며 “한국당의 이번 선택은 국민의 삶과 뜻을 거스르고 완전히 거꾸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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