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국내 벤처기업들은 매출액과 고용규모가 모두 증가하며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민간투자자들은 여전히 벤처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작년 국내 벤처기업들은 매출액과 고용규모가 모두 증가하며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민간투자자들은 여전히 벤처기업을 외면하고 있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벤처기업계의 얕은 저변은 한국의 혁신성장 잠재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지목돼왔다. 한국은 GDP 대비 벤처투자 비중과 유니콘 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의 수 등 벤처기업시장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에서 경쟁국가에 비해 크게 뒤쳐져있다. 

정부는 작년 7월 중소기업청을 부(ministry)로 승격하고 이름을 중소벤처기업부로 바꾸면서 벤처사업계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국내 벤처기업계의 2017년 한 해 성적표는 어땠을까. 시장의 파이는 다소 커졌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 225조 매출 기록하면서 고용도 증가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는 27일 ‘2018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2,059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2017년의 매출·고용실적과 경영실태를 설문조사한 결과다(신뢰도 95%, 표본오차 ±2.03%).

국내 벤처기업들은 2017년 중 양적 성장을 달성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들이 작년 한 해 올린 총 매출액은 225조2,000억원으로 현대자동차(162조원·재계 매출 2위)와 포스코(64조원·재계 매출 5위)를 합한 것과 유사했다. 업체별 평균 매출액은 64억200만원으로 전년 대비 8.9% 늘어났으며, 평균 영업이익(2억6,700만원)도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더 고무적인 것은 고용의 증가세였다. 업체별 평균 종사자 수(21.7명)가 전년 대비 4.3% 늘어났다. 벤처기업계의 전체 고용인구는 76만2,000명으로 국내 5대 그룹(삼성·현대자동차·LG·롯데·SK) 종사자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취업자 증가율이 영업이익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며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대다수 산업계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통계청과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국내 광업·제조업 전 사업체의 고용자 수는 전년 대비 1,000명 감소했고, 300인 이상 기업의 종사자 수 증가율은 1.4%에 불과했다.

◇ 공적자금 지원 의존도 커… ‘민간 주도’ 가능할까

벤처기업 산업계의 규모는 점차 커지는 반면, 내적으로는 국내 중소기업이 가지는 약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설문조사에 참가한 벤처기업인들 다수는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7년 중 개별 벤처기업의 순이익은 2016년보다 8.9% 감소했다. 업체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출(이자비용)이 11.5% 증가했다. 작년 기록한 양적 성장이 반도체의 호황과 글로벌 경기회복에 기반을 뒀다는 점을 고려하면 벤처기업의 자금사정은 앞으로 더 악화되리란 예상도 가능하다. 2017년 반도체 벤처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121억원으로 전체 평균보다 89% 많았으며, 전년 대비 매출액 증가율도 33.5%에 달했다. 반면 2019년부터는 글로벌 경기의 둔화와 함께 반도체 시장의 열기도 다소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기업이 겪은 경영애로사항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74.6%(복수응답 허용)가 자금운용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답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상장기업에 몰린 투자자금은 42조원에 달하는 반면, 창업벤처를 비롯한 비상장기업은 6,723억원밖에 모으지 못했다. 이는 아직까지 중소규모 벤처기업에 대한 민간투자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원인은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투자자금을 돌려주는 엑시트(EXIT)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국내 벤처기업은 자금조달의 60% 이상을 정부 지원에 의존했으며, 인수합병(M&A)을 경험한 비중은 1.7%, 투자·기업공개(IPO)·회사채 발행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전제 지분 중 창업자·대표이사·임직원이 아닌 일반 투자자의 보유 비율은 5.4%였다. 정부가 지난 4월 출시한 코스닥벤처펀드는 8일(영업일 기준)만에 1조원을 모으는 성과를 냈지만,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닥벤처펀드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15.19%로 매우 저조하다.

1년 뒤 발표될 ‘2019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까. 중소기업벤처부 창업벤처혁신실의 석종훈 실장은 “올해는 중기부가 총 8차례의 창업벤처생태계 대책을 내놓은 만큼,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민간 중심의 벤처 생태계 혁신대책’은 기존 공급 위주의 재정지원정책 노선을 민간 주도의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을 유지하는 한편, 2019년 상반기 중 입법될 것으로 보이는 ‘벤처투자촉진법’과 규제제도 개편(업종별 진입규제‧규모 제한‧투자요건 단순화 등)을 통해 민간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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