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CU 점주들이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한달째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6일 시위 현장의 모습. /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야 할 시기지만 편의점주들 사이에선 한숨 소리가 무성하다. 소비 침체와 과당경쟁, 여기에 내년도 인건비 인상 부담까지 짊어지면서 경영난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곡소리는 여전하다. 불공정한 개점과 영업, 폐점 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과 가맹본부의 적극적인 상생책이 없다면 어떤 대책도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최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편의점 CU 본사 앞에서 한달째 노숙농성 중인 가맹점주를 만나, 그 간절할 호소에 귀를 기울여봤다.

◇ CU 점주들, 한달째 노숙농성    

겨울이 깊어가면서 동장군의 기세가 매서워지고 있다. 성탄절 다음날인 지난 26일에도 한파의 기세는 강했다.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파고 드는 추운 날씨였지만, CU 점주들의 천막 농성 시위는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쯤, 안 소장과 함께 비닐 천막 입구문을 걷고 들어가자 박지훈 CU점포개설피해자모임 대표와 한승진 CU 피해 가맹점주,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 등 3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진걸(좌측 첫번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천막 농성 시위 현장을 찾아 점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점주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설 위약금과 자율영업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있어야 된다고 호소했다. 사진은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안진걸 소장,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 한승진 CU 피해점주, 박지훈 CU점포개설피해자모임 대표. /시사위크

CU가맹점주협의회 등은 지난달 29일부터 무기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 계약기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의 최저수익 보장 △피해 점주 구제와 상생협약 △저매출 점포의 폐점위약금 없는 희망폐점 △불이익 없는 심야영업 자율 및 명절·경조사 자율 휴무 보장 등이 핵심 요구 내용이었다.

시위를 시작한지 어느덧 한달째다. 그 사이 편의점 본사 업체들이 △출점 거리 제한 기준 준수(담배소매인 지정거리 50~100m 기준) △부당한 영업시간 구속금지 △저수익 점포에 대한 영업위약금 감경 및 면제 등의 내용이 담긴 자율규약을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체결했다. “이번 자율규약은 어떻게 보고 있냐”는 안 소장의 질문에 박지훈 대표는 탄식부터 뱉어냈다.

박지훈 대표는 “자율규약은 말 그대로 자율이지 않나”며 “안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벌써부터 약속을 파기하고 물밑에선 근접출점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와 관련한 제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 폐점 비용 산정 주먹구구

폐점 위약금 부문 역시,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는 쓴소리를 내놨다. 핵심인 시설위약금 지원 대책이 빠져 있다는 이유였다. 편의점의 폐점 위약금은 크게 영업(운영)위약금과 시설(인테리어)위약금으로 나뉜다. 영업 위약금은 계약 기간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미래 수익분에 대한 본사가 청구하는 보상금이다. 

시설위약금은 인테리어 잔존가 등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통상 편의점 점포를 열 때, 본사는 집기와 인테리어 시설비를 먼저 부담한 뒤, 운영 기한 동안 발생하는 수익에서 일정액을 떼가 회수한다. 중도 해지 시, 감가상각분을 제외하고 이 금액을 한꺼번에 청구한다. 여기에 철거비용과 보수유지비 등까지 점주가 물어야 한다. 2년 안에 폐점할 경우, 이래저래 위약금으로만 통상 4,000~5,000만원이 산정된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도저히 장사가 안 돼 폐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수천만원의 위약금까지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시설위약금 비용 산정 기준이 ‘주먹구구’라는 점이다. 박 대표는 이날 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피해 점주 한승진 씨의 사례만 봐도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관악구에서 편의점 CU를 운영하던 한씨는 최근 점포를 연지 2년만에 폐점했다. 한씨는 “하루에 최소한 매출 150만원은 찍을 것이라는 개발직원의 말을 믿고 시작 했다”면서 “하지만 실상은 그의 반도 안 되는 6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10시간이 넘게 일했지만 2년간 단 한푼도 벌어가지 못한 채 적자만 쌓였고, 결국 임대차 기간 만료 기한에 맞춰 폐점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그가 본사로부터 처음에 전달받은 폐점 위약금은 4,000만원에 달했다. 영업위약금과 시설위약금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었다. 이미 편의점 사업을 하면서 상당한 빚을 진 그로선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마침 박 대표와 연이 닿았던 그는 상담을 거쳐 공정거래위원회조정원에 위약금 조정절차를 신청했다.

그런데 서류를 접수한 지 하루만에 본사 담당자로부터 ‘폐점위약금을 1,900만원까지 낮춰주겠다’는 내용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당자가 '조정절차를 취소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건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가 막혔다”고 한씨는 토로했다. 그는 “항의를 한 점주들은 깎아주고, 모르고 가만히 있는 점주들은 그냥 수천만원의 폐점 비용을  떠앉는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 “불이익 없는 자율영업 필요”

폐점 비용 산정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씨는 “저처럼 2년을 영업하고 폐점을 한 점주의 위약금 내역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며 “똑같이 총 1,900만원의 위약금이 산정됐는데, 인테리어 잔존가, 철거 비용 산정 금액이 달랐다. 저는 인테리어 잔존가가 600만원이었는데, 다른 점주는 1,000만원으로 산정됐다. 대신 이 점주한테는 철거비용을 받지 않았다. 저는 480만원 정도의 철거비용이 책정됐다.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한 시설 위약금 산정 기준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CU 점주들은 본사가 위약금을 2,000만원 안팎으로 맞추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시선을 보냈다. 본사가 돈을 떼이지 않을 수 있는 마지노선에 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박지훈 CU점포개설피해자모임 대표는 "점포 개발 당시, 본사의 책임도 있는 만큼 저수익 점포에 대해선 적극적인 상생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위크

박 대표는 “편의점을 오픈할 때, 가맹점주가 본사에 맡기는 돈이 2,200만원 정도 된다”며 “여기서 700만원 정도가 가맹비로 사라지는 점을 감안하면 폐점을 한다면 1,500만원 정도는 돌려받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폐점 위약금으로 1,900만원 정도가 책정됐다고 치자. 그러면 본사는 여기서 점주들이 맡겨놓은 돈에서 1,500만원을 제한 뒤, 400만원을 돌려주면 된다. 본사는 절대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물품 반품비도 점주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박 대표는 “폐점 과정에서 본사가 받아주는 물건 반품 비용은 300만원으로 고정돼있다”며 “유통기한과 상관없는 제품은 받아줄 법도 한데, 300만원 이상은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최대한 팔아서 처리하라는 식이다. 1,500~1,800만원의 물품을 시켰다고 한다면, 담배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팔아도 800만원의 물품은 남는다. 여기서 300만원만 받아주니, 나머지 500만원은 점주가 떠안아야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폐점 비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안 소장은 2013년 세상을 떠난 한 CU 점주의 사건을 떠올렸다. 안 소장은 “2013년 편의점 폐점과 관련해 갈등을 빚다가 한 점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며 “당시 CU 본사는 고인의 사망진단서를 조작해 물의를 일으켰다. CU 본사는 대국민사과까지 하면서 상생안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CU 점주들은 저수익 점포에 대해선 보다 확실한 위약금 감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박 대표는 “애초에 잘못된 예상수익 정보를 제공하고 점포를 개발한 것도 문제이지 않냐”며 “가맹본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문제 삼으면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한다. 무책임한 발언이다. 가맹점주들이 프랜차이즈를 하는 이유는 그 대기업의 정보력을 믿고 하는 것이다. 보다 명확한 정보와 이에 대한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업시간 구속 금지 조항도 현재는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현재는 24시간 영업을 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19시간 영업으로 바뀔 경우, 전기세 지원이 없어지는데다 배분율까지 경감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도 기존 배분율에서 14% 포인트가 빠진다는 말에 영업시간 변경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CU 점주들은 지원금 중단 등 불이익 없는 심야 자율영업을 요구해온 것이다.

◇ “작은 관심과 응원만으로 힘 얻는다”

이런한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내년에는 점주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내년이면 당장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가 오른다. 이로 인해 점주들이 기존보다 3~4시간은 더 일하게 될 것이다.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몸이 버텨내질 못한다. 이미 최근에도 과로사로 사망한 점주가 있었다. 내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다가오는 새해가 이렇게 공포스럽기는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박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가 원하는 건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출구는 열어달라는 거다. 현재의 대책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된다. 본사의 적극적인 상생안을 이끌내기도 역부족이다. 본사는 점주협의회와의 협의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상생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반 점주들을 상대로 몰래 서명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편의점 예비창업자가 26일 시위 현장에 들러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건네고 간 자양강장제를 보고 작은 미소를 짓고 있는 CU 점주들. /시사위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광 의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강 건너에 (정부가 얘기하는) 유토피아가 있다면 가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급류에 떠밀려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소한 밧줄이라도 던져 살려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  

이들은 제도 개선책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노숙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살벌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과정이지만, 작은 응원에도 힘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누군지 알지 못하는 점주가 “힘내라”는 메시지와 함께 현금 5만원을 보낸 일화를 들려줬다. 폐점 하는 과정에서 자살기도를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한 점주가 힘겨운 투쟁을 응원하며 작지만 큰 정성을 보낸 것이다.

또 이날 시위 현장에서는 한 젊은 청년의 깜짝 방문도 있었다. 편의점 본부에서 창업설명회를 듣고 돌아가는 길이라던 청년은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자양강장제 한 박스를 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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