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윤계상이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로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잔혹하고 두려움 없는 조선족 두목으로 충무로를 장악했던 ‘장첸’  윤계상이 말을 모아 나라를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으로 돌아왔다.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를 통해서다. 순한 맛이 매력인 ‘말모이’는 윤계상에게 ‘독한’ 영화로 남았다. 끝없이 고민하게 만들었고, 외로운 싸움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오는 9일 개봉하는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로 조선말 큰 사전의 모태가 된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극중에서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개봉에 앞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말모이’는 어떤 조미료로 넣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맛으로 마음을 흔든다.

윤계상이 ‘말모이’를 촬영하면서 겪은 고민을 털어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윤계상이 ‘말모이’를 촬영하면서 겪은 고민을 털어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 윤계상은 말을 모아 나라를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을 맡았다. 정환은 유력 친일파 인사의 아들이지만, 식민 치하에서 우리말 사전을 만든다는 큰 목표로 아버지, 그리고 일제와 맞서는 인물이다. 갈등의 반대편에서 까막눈 판수와의 만남을 통해 ‘말모이’가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함께 하는 것임을 깨달으며, 사람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성장한다.

1999년 그룹 지오디(god) 출신 윤계상은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쉽지 않은 역할들을 소화해왔다. 잔혹하고 두려움 없었던 ‘범죄도시’(2017)의 장첸은 조선족에다 조직 두목이었고,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장애를 갖고 있는 가난한 청년 도훈 역을 맡았다. ‘소수의견’(2015)에서는 용산 참사 재판에 뛰어든 국선 변호인 진원을 연기했다.

그런 윤계상에게도 ‘말모이’ 정환은 또 한 번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윤계상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 처음 봤을 때와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소감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되게 감동적이었다. 완성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확신을 갖고 연기한 게 아니라서 불안했는데 보고 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한 게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감동적으로 와닿았나.
“말모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감동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다가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너무 부끄러워졌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이 말들이 그분들이 지켜냈다는 것에 감사하더라. (영화 속 내용이) 거의 다 사실이다.”

-‘말모이’ 제작보고회에서 류정환을 연기하는 동안 ‘외로웠다’고 표현했다.
“정환의 진짜 모습은 판수 딸 순희(박예나 분)와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밝고 유쾌한) 사람이 큰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예민해지고 버거워하는 모습들을 표현하려고 했다. 정환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았고 더불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환은 사실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보니 막중한 책임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다 죽을 뻔했다. 원래는 배우들이 자신을 투영시켜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류정환은 그 깊이가 너무 깊었다. 보통 누군가가 다치거나 위기가 오면 현실에서는 타협을 하는데 한글을 꿋꿋하게 지키고자 하는 정환의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 마음을 잡는데 힘들었다.

‘범죄도시’ 장첸 같은 경우에는 폭력성을 증명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는데, 정환은 보여지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관객이 상상을 하게 되지 않나. ‘오죽하면 저럴까’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너무 힘들었다. 계속 풀리지 않는 숙제를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환의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려고 시도는 했었다. 원고를 빼앗기고 지하 창고로 들어갔을 때 ‘여기서 한번 울어도 되나요’해서 울었는데, 너무 끝까지 가는 거다. 멈추지 못하고 오열을 했다. 결국 담는 게 별로 좋지 않겠다 싶어서 참았다. 참는 걸로 가는 게 고통을 더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지 않나 싶었다.”

-반대로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도 느꼈다고.
“찾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배우로서 한 장면에 20 테이크(중간에 끊지 않고 촬영한 하나의 연속적인 화면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를 간다는 건 대단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기는 후회를 하나도 안 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에너지를 다 썼다. 그때까지 준 기회들이 배우로서는 너무 좋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너무 그립다. 막연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질 까도 싶다. 그때는 죽을 뻔했지만. 하하.”

‘범죄도시’(2017)로 68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윤계상.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범죄도시’(2017)로 68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윤계상.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범죄도시’(688만)로 흥행작을 보유하게 됐다. 끝나고 악역이 많이 들어왔을 것 같다.
“많이 들어왔다. 확실히 시나리오의 다양성은 생긴 것 같다. 예전에 선한 역할만 들어오다가 지금 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들어온다. 너무 감사하다. 정말 너무 감사한 일이다.”

-장첸이라는 캐릭터가 계속 따라붙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좋다. 재밌는 것 같다. 남성분들이 만나면 ‘장첸 형님’한다. 싸움을 잘 하는 줄 아는 것 같다. 하하. 하지만 결국 잊힐 거다. 나는 이미 그거에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지오디 같은 것 같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흥행에 대한 생각도 변화가 있나.
“변함없다. 흥행보다 영화가 잘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공개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다음 일이다. 완성하는 전 단계까지 함께 하는 배우들끼리 소통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잘 되고 안 되고는 그다음 문제인 것 같다.”

-‘말모이’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나.
“관객들도 나와 똑같았으면 좋겠다. 정환이가 겪었던 사건에 윤계상이 뛰어 들어가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참 좋은 영화 봤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저는 ‘말모이’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 드물다. 막상 시나리오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드물다. ‘말모이’ 잘 됐으면 좋겠다. 감동이 엄청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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