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삶에 도전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삶에 도전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연말연시 특집기획을 준비하며 ‘플라스틱 없이 살기’를 떠올린 건 얼마 전 접한 충격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의 한 해변에서 죽은 고래가 발견됐는데, 그 고래의 배 속에는 플라스틱 컵이 무려 115개나 들어있었다고 한다. 태평양에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섬이 둥둥 떠다니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 소식은 소름이 끼치게 만들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플라스틱은 과연 어디로 갈까.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분리수거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분리수거는 애초에 불가능하며, 분리수거를 하더라도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오염이 심하고 세척이 어렵거나 경제성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플라스틱 사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플라스틱이 필요 이상으로 남용되고 있다.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시급한 과제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플라스틱 없이 살기’는 연말연시를 보다 의미 있게 보내보려는 나름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기획 단계부터 벽에 부딪혔다. 완전하게 플라스틱 없이 생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당장 욕실에 놓인 치약과 샴푸, 냉장고 안의 반찬통 등이 모두 플라스틱으로 이뤄져있었다. 자동차는 물론 버스와 지하철도 탈 수 없었고,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해 일 자체를 할 수 없었다. 7개월 된 딸의 장난감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신용카드로 소비를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능하되, 조금이나마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기준을 세워봤다. 너무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대상을 좁힌 것이다. 그렇게 이번 기획은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72시간 살기’로 결정됐다. 2018년 12월 30일 오전 9시부터 2019년 1월 2일 오전 9시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과 단절한 72시간의 기록을 담아본다.

연말 송년모임으로 과음한 다음 날, 시원한 물조차 마실 수 없었다.
연말 송년모임으로 과음한 다음 날, 시원한 물조차 마실 수 없었다.

◇ 30일 일요일 오전 9시 4분. 눈 뜨자마자 상황발생

전날 송년 모임으로 모처럼 새벽까지 과음을 하고 귀가한 터라 속이 불편한 가운데 잠에서 깼다. 스마트폰을 집어 시간을 보니 9시 4분이었다. 더불어 미리 설정해둔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살기’ 일정이 표시됐다.

그리곤 심한 갈증을 느껴 냉장고 문을 열고 마실 것을 찾았다. 평소처럼 2L 생수통을 집어 들자 페트병 특유의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이 생수통도 일회용 플라스틱이란 자각이 들었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탄산수와 콜라도 있었지만, 이 역시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있었다. 우유는 종이팩에 담겨있었지만, 숙취로 인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부대끼는 속을 부여잡고 급한 대로 물을 끓여 커피나 한잔 마시기로 했다. 아울러 보리차 물을 끓이기 시작하고, 아내에게 유리물병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며 정수기를 사자고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살걸 그랬다.

평소 별다른 생각 없이 생수를 사 마셔왔다. 집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꾸준히 일회용 플라스틱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별다른 생각 없이 생수를 사 마셔왔다. 집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꾸준히 일회용 플라스틱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갈증도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했는데 이내 허기가 느껴졌다. 짬뽕이나 뼈해장국 같은 얼큰한 음식으로 ‘제대로’ 해장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선호하는 중국집은 플라스틱 용기에 짬뽕을 배달하는 곳이었다. 배달앱을 통해 뼈해장국 배달하는 곳을 찾았지만, 리뷰를 보니 이 집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배달됐다. 직접 가서 먹자니 혼자갈수도 없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일이 너무 커졌다.

결국 군침만 삼킨 채 라면을 꺼냈다. 다만, 이 역시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비닐을 발생시켰다. 비닐은 넓은 의미에서 플라스틱에 해당하고, 우리 생활 속에서 무척 많이 소비된다. 때문에 이번 기획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도 비닐을 포함할지 고민했으나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해 제외했다.

아이들 장난감은 플라스틱으로 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이들 장난감은 플라스틱으로 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 플라스틱 없으면 어떻게 씻을까

어느 정도 속을 달랜 뒤 좀 씻기로 했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로 머리를 감고,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칫솔로 양치를 했다. 몸을 닦을 때 쓰는 샤워타올도 플라스틱의 한 종류였다.

씻으면서 대안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먼저, 샴푸나 바디샤워의 경우 리필용을 구입해서 유리병에 담는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미끄러운 욕실에서 깨질 위험이 컸고, 무엇보다 ‘펌핑’이 없으면 줄줄 흐르기 일쑤일 것 같았다. 비누만 사용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실천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칫솔은 손잡이 부분을 나무로 제작한 것을 팔기도 했다. 일반 칫솔보다 비싼 가격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미리 사둔 칫솔을 다 쓰고 나면 나무칫솔 구입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치약은 자일리톨 껌을 씹거나 소금으로만 하지 않는 이상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은 대부분 플라스틱이었다. 인형도 눈은 플라스틱이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살기’ 첫날이라 그런지 자꾸 플라스틱만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은 물려주기나 중고거래를 통해 사용기간이 길고, 부피가 커서 분리수거 및 재활용이 비교적 원활하다고 한다. 나눠쓰고, 다시쓰는 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어느덧 일요일 오후가 됐다. 시원하게 해장을 못해서인지 얼큰한 아내표 마파두부덮밥을 저녁으로 먹고 싶었다. 두부와 아이 이유식 재료를 살 겸 동네 마트로 향했다.

그렇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두부는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마파두부덮밥에 꽂혀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다행히 이 마트는 판두부도 판매하고 있었다. 두부를 하나 집어 비닐에 담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내일 출근길에 챙겨갈 텀블러를 미리 준비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일회용 플라스틱 없이 살기’ 첫날이 좌충우돌 속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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