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 조성길 씨가 잠적 이후 망명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대사급 망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 뉴시스
북한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 조성길 씨가 잠적 이후 망명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대사급 망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북한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잠적했다. 벌써 두 달 째다. 지난해 11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공관을 이탈한 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망명 신청 여부조차 확인이 안됐다. 다만 이탈리아 당국에서 신변을 보호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일각에선 제3국으로 이미 빠져나갔을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이탈리아가 유럽 내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셍겐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이다. 종적을 감춘 그의 이름은 조성길(44) 씨다.

◇ 태영호 “비교 안 될 정도로 경제력과 가문 좋아”

조씨는 2015년 5월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 3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이후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당시 문정남 대사가 이탈리아에서 추방되자 대사직 대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가 사라진 뒤 김천 신임 대사대리가 부임했다. 조씨의 행방을 둘러싸고 관계국들이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과 달리 북한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대북 전문가들은 조씨가 북한 정권의 치부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불리는 만큼 함구하려 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조씨의 출신성분에 따라 북한 내부에 미칠 파장도 달라질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은 “고위층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탈북 외교관 출신 인사들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특히 태영호 전 북한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는 “조씨는 저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력과 가문이 좋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과 장인 모두 대사를 지냈고, 부인 리광순 씨도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라는 게 태영호 전 공사의 설명이다. 태영호 전 공사는 과거 조씨의 장인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북한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를 지내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망명설이 제기된 조씨에 대해 “지도층의 사치품 밀수 루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 뉴시스
북한 영국 주재 대사관 공사를 지내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는 망명설이 제기된 조씨에 대해 “지도층의 사치품 밀수 루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 뉴시스

이에 따라 조씨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의 직함이 대사대리였지만 사실상 대사로 지내면서 유럽 지역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것. 북한 지도층의 밀수품 공급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영호 전 공사에 따르면, 조씨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트와 와인 등 사치품을 공급하는 담당자들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북한은 해외에 파견할 외교관 등을 선발할 때 출신성분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출신성분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조씨의 망명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북한은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2011년 이후 대사가 망명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북한 내부에서 대대적인 ‘놀가지’ 색출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놀가지는 체제를 이탈해 해외나 남한으로 망명하는 인사를 말한다. 외교라인의 숙청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북한은 태영호 전 공사가 망명했을 때도 외무성에 대한 집중 지도 검열과 유럽 담당 외무성 부상 등을 숙청한 바 있다.

현재로선 조씨가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잠적한 두 달 동안 국정원에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망명을 시도했을 경우, 그 나라는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수교가 안 된 만큼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은 조씨가 망명을 결심한데 대해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고 내부의 체제 이반이 확산될 수 있다는데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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