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관련 재판에 불출석하자 법원에서 강제구인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 관련 재판에 불출석하자 법원에서 강제구인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국립묘지 안장 방안에 대해 ‘법 개정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7일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1.5%가 국립묘지 안장에 반대했다. 반면 국립묘지 안장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26.8%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보수층에서도 양측 의견이 팽팽하다는 점이다. 찬성(44.5%)이 반대(44.2%)보다 0.4%p 차이로 근소하게 높았다.( 4일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3명 대상. 무선(10%) 전화면접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p 응답률 7.1%.)

◇ 읍소전략 안 통했다

벌써부터 국민묘지 안장을 둘러싸고 뒷말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측근으로 불리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그 문제는 우리 관심 사항이 아니고, 우리가 결정할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미 회고록을 통해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묻어 달라. 거기서 남북 통일이 되는 걸 지켜보겠다”고 밝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관심 사항은 무엇일까.

법원의 강제구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격 헬기를 목격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해 지난해 5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법정 출석은 미뤄왔다. 사건이 제기된 광주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공평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관할이전 신청까지 냈지만 대법원으로부터 기각 당했다. 이후 처음으로 이날 재판이 열렸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독감을 이유로 또다시 출석을 미뤘다. 이에 법원은 오는 3월 11일 강제구인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이순자 여사의 실패한 여론 대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했다. 일례가 망언 논란이다. 그는 보수 매체와 인터뷰에서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며 “5·18단체도 이미 얻을 거 다 얻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당부도 있었다. “5공화국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노인네를 너그럽게 봐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정심 유발용’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가 된 회고록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쓴 것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 뉴시스
문제가 된 회고록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쓴 것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 뉴시스

실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알츠하이머를 내세워 감정적으로 호소해왔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건망증 수준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으나, 법정 출석이 불가피해지면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데 인정했다. 도리어 지금은 병세에 대해 세세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거나 “하루에 10번 넘게 이를 닦는다”는 식이다. 방금까지 한 일이나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범으로 지목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도 헷갈려 하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여론의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라면, 알츠하이머 진단(2013년)을 받은 시점은 문제가 된 회고록이 출간(2017년)되기 전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진단 4년여 만에 회고록을 출간한 셈이다. 의혹이 제기되자 민정기 전 비서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난 2013년께 초고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퇴고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개입이 없었다”면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쓴 것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정 출석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려워 보인다. 형사재판은 민사·행정재판과 달리 피고인이 출석해야 공판 개정이 가능한데다 법원은 알츠하이머 투병 사유에도 법정 출석을 요구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정주교 변호사는 이날 취재진들에게 “고의적으로 재판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라면서 “다음 기일에는 반드시 재판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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