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 보도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 보도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 30년 만에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 개편된다. 최저임금 구간 설정과 최종 결정을 이원화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나눠 구간설정위원회가 경제지표 등을 수렴해 인상범위를 정하면, 결정위가 그 안에서 확정하겠다는 것. 최저임금 결정 기준도 좀 더 다양화해 여러 고려 요소들을 포함시켰다. 정부를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객관성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인 반면 노동계에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경영계 “대체적으로 환영... 구분적용 도입해야”

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 양측과 공익위원회가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방안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지난 7일 발표했다.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개편안에 따르면 우선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위원 9명으로 구성되고, 결정위원회는 노·사·공익 15명 또는 21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구간결정위원회 위원은 노·사·정이 각각 5명씩 추천해 노사가 순차적으로 각각 3명을 배제하거나 노·사·정이 각각 3명을 추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고용부는 순차배제 방식 적용 시 극단적 시각을 지닌 전문가를 배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고용수준과 기업지불능력 등의 여건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대외적으로는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기업의 지불능력을 논의에 반영한다는 점에서 경영계의 고충을 일부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경영계는 차등적용 방안이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은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저임금 인상 논란이 불거지던 지난해 7월 법제화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8일 논평을 내고 “공익위원 선출 절차 개편 등은 그간 중소기업계가 해외사례 및 ILO협약 등에 근거해 주장해 온 사항”이라며 “정부가 발표한 개선안은 제도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미 2년 연속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으로 당장 생계유지가 불확실한 영세기업에 대해 당초 검토하기로 한 구분적용이 언급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라며 “근로자 10명 중 4명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못하는 소상공인과 그 외 기업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적용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내년도 적용 최저임금 심의 전까지 규모별·업종별 실태조사 및 법 개정을 통해 최저임금 구분적용을 추진할 것을 촉구할 방침이다.

지난 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초안 내용. /고용노동부
지난 7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초안 내용. /고용노동부

◇ 노동계 “정부, 최저임금 제도 무력화 나서나”

경영계의 반응과 달리 노동계는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을 놓고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를 두는 것은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구간설정위에서 전문가위원이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결정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전문가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있음에도 또 다시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구간설정위를 만드는 건 불필요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 폭은 전문가의 연구·분석 영역이 아닌 현장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대정부 투쟁까지 예고한 상태다. 이에 노동계는 대응 방향을 모색해 개편안 보완 및 저지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9명은 오는 9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워크숍을 개최한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같은 날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정부 투쟁 방향을 설명할 계획이다.

한국노총도 전날 논평에서 “정부가 제시한 구간설정위원회는 당사자인 노사가 배제된 채 구성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공익위원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발표된 최저임금 연구에서 고용과 경제영향 간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다. 더구나 지불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법 취지에도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새로 마련된 최저임금 개편안이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한편 지금까지 최임위에서 32차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동안 노·사·공익 3자의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경우는 7회, 노사 모두 참석한 가운데 표결로 결정된 경우는 8회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도 사용자위원들이 전원 퇴장한 상태에서 표결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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