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콜센터 사업장에 대한 현장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콜센터 사업장에 대한 현장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지난해부터 열악하고 반인권적인 근무현장을 고발해온 콜센터 노동자들이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문제들을 고발했다. 그러나 3개월 가량이 지난 현재까지도 문제 사항들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콜센터 노동자들은 “인권위가 직접 콜센터 사업장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인권침해 문제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 인권위에 사업장 현장조사 촉구한 상담사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콜센터지부 애플케어상담사지회(이하 애플 노조)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원콜센터분회(이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등으로 구성된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콜센터 노동자들은 “콜센터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기본적인 모성조차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콜센터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휴게시간 미보장 및 화장실 출입 제한 ▲연차 사용의 자유 미보장 ▲실시간 노동통제 및 감시 ▲감정노동에 대한 회피권 부재 ▲모성보호 미보장 등을 들었다.

특히 상담사들은 콜센터 산업의 원·하청 구조가 이 같은 강압적인 노동통제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청은 하청을 쥐어짜고, 하청 사업주는 상담사들을 쥐어짜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지난해 설립된 콜센터 노동조합 역시 원청과 하청 모두 각종 편법을 동원해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건강과 안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휴식시간은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원하는 때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가는 것, 진상고객은 회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실시간 전자감시 또한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2019년 현재 5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콜센터에 종사하고 있다. 대부분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상담사들에게 인간적인 존엄은 머나먼 이야기”라며 “실적을 이유로 반인권적인 처사를 더 이상 중단하라. 그래야 콜센터 산업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 상담사들 “인권침해가 일상”... 충격적인 증언도

상담사들이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각종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적시돼 있었다. 특히 이 같은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콜센터 산업이 출범한 이래 지속되고 있다는 게 상담사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 콜센터 HR 관리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있는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2006년에 비해 2016년에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사측의 통제가 더욱 강화됐다. 전자감시를 활용한 고감시와 고강도 노동이 강요되고 있으며, 심지어 처벌을 목적으로 한 모니터링이 10년 전보다 오히려 더 증가했다는 게 연구 내용이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일부. 콜센터 관리자가 상담사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자리 이탈을 지적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일부. 콜센터 관리자가 상담사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자리 이탈을 지적하고 있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한 고객의 응대를 마치면 8초안에 새로운 고객을 응대해야합니다. 쉼 없이 전화는 들어오지만 점심시간을 제외한 하루 온종일 상담사들의 휴식시간은 30분이며, 이마저도 승인이 없다면 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허락 없이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다는 건 인간으로써 고통 그 이상입니다. 특히 월경이라도 하는 날은 정말 불안과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애플케어상담사 증언)

통화 내용도 수시로 모니터링 되고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 외에도 통화내용을 녹취해서 무작위로 점검하거나 고객을 가장해서 상담원과 통화하는 ‘미스터리 콜링’도 동원된다. 이 같은 노동통제는 고객의 성희롱이나 폭언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화를 끊을 수 없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콜센터 측은 전화 거부는커녕 폭언을 당해도 친절과 정중함을 유지하라는 요구하는 실정이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일부. 실시간으로 말투와 응대를 지적받고 있는 콜센터 상담사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일부. 실시간으로 말투와 응대를 지적받고 있는 콜센터 상담사들. /콜센터 노동조합 대책위원회

상담사의 70% 이상 여성인 콜센터 사업장은 각종 여성 질환에 대한 인식도, 대처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상담사들은 입을 모았다.

“한 동료는 자궁에 문제가 있어 수술을 했고, 안정이 시급한 상항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난임이 될 수 있다는 게 병원소견이었습니다. 미혼 여성에게 난임 위험 소견은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미 수술로 연차를 다 소진했다며 아무런 배려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광주의 한 동료도 자궁 외 임신으로 나팔관 절제 수술을 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임신 11주 이내 유산 시 5일의 휴가를 보장하고 있지만 회사는 연차에서 차감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상담사 증언)

한편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사해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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