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환경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수저계급론'이 청년층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2017년 시행된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는 4년 전에 비해 한국사회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늘어났다.
집안 환경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수저계급론'이 청년층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시행된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는 예년에 비해 한국사회의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늘어났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지난 2015년에 처음 등장한 ‘흙수저’‧‘헬조선’ 등의 신조어는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이는 어휘가 됐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데 지친 청년층에게서 대대적인 지지를 얻은 것이 인기의 배경이다. 이 ‘수저계급론’의 배경에는 계층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좌절감이 깔려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8일 발간한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는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청년층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실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이용관 부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과 계층이동 가능성 영향요인 변화 분석’ 보고서에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외부 자원에 의해 계층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 소득 높고 주택 보유한 가구일수록 계층이동 가능성 높게 평가

연구자가 통계청의 사회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청년층의 인식 변화를 조사한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이동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고 답한 인구가 2013년 37.08%에서 2017년 46.30%로, “매우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동기간 9.72%에서 15.25%로 높아졌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히 저소득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3년과 2017년의 설문조사를 비교했을 때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에서는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0.38만큼 떨어졌다. 반면 200만원~300만원 가구에서는 0.32, 400만원~500만원 가구에서는 0.21만큼 하락하는데 그쳤다. 또한 2013년 조사에서는 소득이 700만원을 넘는 가구에 속한 청년층의 주관적 계층의식이 한 단계 높아질 가능성이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에 속한 청년층의 5.14배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2017년 자료를 기초로 한 이번 조사에서는 양측의 격차가 8.22배로 확대됐다.

계층이동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주거형태였다. 자가 주택을 보유한 가구의 청년층은 임대 주택 가구의 청년층보다 계층이동 가능성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신뢰도 99%). 이는 결국 개인의 능력보다는 외부에서 제공되는 자원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는 이에 대해 “부모에게서 자녀로 직접 이전 가능한 경제적 자원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국민인식이 악화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뿐만이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국민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 상승 가능성은 낮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2013년 75.2%에서 2017년 83.4%로 상승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는 자녀의 계층지위 상승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2013년 29.7%에서 2017년 39.8%로 증가해,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노동을 통한 계층상승’은 가능할까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에 참여한 인구 중 대졸인구와 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은 모두 2013년 사회조사 당시보다 높았다. 학력과 노동(경제활동)은 일반적으로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분류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사회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학력·경제활동은 청년층이 느끼는 계층이동 가능성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역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우선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층이 느끼는 계층이동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청년층에 비해 0.8배 낮았다. 이는 한국 노동시장이 잠재적인 계층이동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013년 조사에서 청년층의 계층의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던 부모의 학력·직업은 영향력이 약해졌는데, 소득지위 효과가 상대적으로 커진 결과로 해석됐다.

연구자는 해당 분석 결과에 대해 “청년들 사이에서 ‘좋은 일자리’를 위해 노동시장 진입 시기를 늦추는 경향이 강해진 것을 방증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고용통계에서는 청년층 취업준비인구가 증가하고 직장탐색기간이 늘어나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통계청의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취업준비생’으로 분류된 인구는 70만2,000명이다. 이는 5년 전인 2013년 12월(52만2,000명)에 비해 34.5% 많으며, 연평균 6.1%씩 늘어난 숫자다. 한편 신한은행의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취업준비생의 평균 취업준비 기간은 13개월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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