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한 파르마 칼초 1913은 세리에A 복귀 첫 시즌을 순조롭게 보내고 있다. /뉴시스·AP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기에 성공한 파르마 칼초 1913은 세리에A 복귀 첫 시즌을 순조롭게 보내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이탈리아 세리에A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세리에A 7공주’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 세리에A 7개 강팀이 유럽을 호령하던 시절을 가리킨다. 유벤투스, AC밀란, 인터밀란, AS로마, 파르마, 피오렌티나, 라치오 등이 7공주 멤버다.

이들 7개 구단 중 가장 기구한 운명을 맞았던 것은 파르마다. 현재 정확한 명칭은 파르마 칼초 1913이다. 편의상 파르마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1913년 창단 이후 줄곧 하부리그에 머물렀던 파르마. 반전이 찾아온 것은 1990년 든든한 재정지원 속에 세리에A로 승격하면서다. 이후 파르마는 1991-92시즌, 1998-99시즌, 2001-02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차지했고, 1994-95시즌과 2000-01시즌엔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리에A에서도 1996-97시즌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황금기를 보냈다.

‘세리에A 7공주’ 일원답게 유럽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1992-93시즌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고, 1994-95시즌과 1998-99시즌엔 유로파리그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파르마는 2003년 든든했던 재정적 버팀목이 모기업 파산으로 사라지면서 점차 영광의 시절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2007년 다른 구단주를 맞이했지만, 2007-08시즌 19위에 그치며 세리에A를 떠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파르마가 다시 세리에A로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8-09시즌 세리에B 준우승을 차지하며 곧장 세리에A로 복귀한 것이다. 세리에A 복귀 첫 시즌인 2009-10시즌엔 8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세리에A 중상위권을 오가던 파르마였지만 고질적인 재정 악화가 늘 고민거리였다. 구단 직원들은 물론 선수들의 급여도 밀렸고, 심지어 원정경기에 이용할 버스도 대여해서 타야했다. 결국 2014-15시즌 초라한 성적과 심각한 경영난이 겹치면서 파르마는 파산하고 만다. 이에 따라 세리에A 소속이던 파르마는 아마추어리그에 해당하는 세리에D로 곧장 강등됐고, 이름까지 빼앗겼다. 현재 정확한 명칭이 파르마 칼초 1913인 이유다.

나락으로 떨어진 파르마. 하지만 파르마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2015-16시즌 세리에D에선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며 ‘무패’로 레가 프로 승격에 성공했다. 2016-17시즌 레가 프로 B조에서는 2위에 그치며 자동승격 티켓을 놓쳤지만,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짜릿한 승리를 이어가며 또 다시 승격에 성공했다.

9년 만에 다시 돌아온 2017-18시즌 세리에B. 파르마는 세리에B에서도 첫 시즌부터 인상 깊은 모습을 보이더니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결과와 함께 2위를 차지하며 자동승격 티켓을 거머쥐었다. 세리에D부터 매년 승격에 성공해 세리에A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파르마는 다시 세리에A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 시즌 전반기까지 7승 4무 8패 승점 25점을 기록하며 1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승격팀이지만, 당장 강등을 걱정해야할 처지는 아니다.

파르마의 몰락엔 지독한 재정난이 있었고, 파르마의 부활엔 끈끈한 의리와 열정이 있었다. 파르마 팬들은 파산과 세리에D 강등에도 실망하지 않고 더 큰 성원을 보냈고, 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재건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러한 의리와 열정이 연이은 승격으로 이어지자 든든한 재정적 버팀목도 다시 등장했다. 기적은 결코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돌아온 7공주 파르마. 그들이 앞으로 써내려갈 또 다른 스토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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