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남으로써 북미 간 2차 정상회담이 윤곽을 드러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회담을 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재회는 북미 양자관계 뿐 아니라 남북한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지대할 것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접근과 이에 맞서는 김정은 체제의 카드가 무엇일지도 관심거리다. 특히 대북제재 완화 및 해제 문제는 향후 북핵 해법과 김정은 정권의 생존은 물론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관건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김정은 위원장과 가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평양공동선언에 담았다. 여기에는 한반도 전쟁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 분야 합의를 필두로 남북 교류 협력과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표방하는 사안들이 망라됐다.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 재가동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산림분야와 보건·의료협력 강화는 이 가운데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철도·도로 관련 사업의 경우 현재와 같은 대북제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본격적인 추진이 사실상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건·의료의 경우도 북한 당국이 남북 간 민간차원의 인적 접촉을 꺼리고 있어 진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사업이 바로 산림분야 남북 협력이다.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협력’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묘목지원이나 양묘장 건설 같은 대북지원 사업 성격을 갖고 있다. 주무부서인 산림청과 통일부는 2월 말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도 순풍을 타게 된다면 묘목지원 방식을 시작으로 산림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묘장 지원 같은 본격적인 단계의 사업은 당장 어렵더라도 묘목 제공과 병충해 방제를 위한 공동 작업, 나무심기를 위한 남북 간 인적 교류 등은 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무엇보다 북한이 산림 분야 협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대남관련 기관이나 인사들이 우리 민간단체 관계자들에게 산림분야 협력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지원 가능성을 타진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북측이 산림 분야 지원을 요청해온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북한도 이런 분위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자 노동신문은 국토환경보호성 고위 간부의 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모든 산들을 푸른 숲이 우거진 황금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시한 사실을 전했다. 이 간부는 2018~2024년이 북한 당국이 설정한 산림복구전투 2단계 기간이라고 밝히고, 2022년까지는 목표로 설정한 나무심기를 마치고 이후 2년 동안 보식과 가꾸기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직접 산림녹화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국토관리 총동원 열성자 대회’를 소집했다. 토지 정리와 치산치수 같은 자연개조사업은 물론 산림과 도로·하천·지하자원·환경보호를 망라하는 분야에서 대변혁을 이뤄보자는 취지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특히 잔디와 나무 심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방문하는 공장과 기업소·군부대는 눈에 띄는 곳마다 잔디를 입히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산림 황폐화를 인정하는 발언을 수차례 쏟아낸 김정은은 "10년 안으로 벌거숭이산을 모두 수림화 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노동당과 북한의 각급 기관, 지역 단위는 비상이 걸렸다. 인민군 부대들이 나서 양묘장 건설에 매달렸고, 조선중앙TV 등 매체는 산림녹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연일 쏟아냈다. 김일성대학에는 산림과학대학이 세워졌다.

하지만 경제난과 대북제재 파장 속에서 산림분야 발전이나 외부지원 확보는 난항을 겪었다. 남북 간 산림분과 회담을 열었지만 실질적인 사업추진이나 진전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형식적으로 나무심기에 나서는 경우가 만연해졌다.

지난해 9월 30일자 노동신문은 산림복구 사업을 촉구하는 기사를 통해 현장 간부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신문은 “신발에 흙을 묻히기 싫어하고 그쯤 하면 되겠지 하면서 요령주의적으로 일한 책임 일꾼들의 주인답지 못한 일본새(일하는 스타일)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역을 콕집어 “나무 심기 계획도 미달하고 심은 나무도 잘 가꾸지 않아 식수 대상지인지 풀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란 비판이 나왔고 “나무 심기 계획을 심하게 미달하고도 허풍을 친 지역”까지 공개됐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총면적의 73% 수준인 899만ha가 산림지역이다. 이 가운데 황폐화된 산림은 284만ha로 전체 산림의 32%에 이른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산림황폐화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산림과학원 측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10만ha의 대북 조림사업이 이뤄지면 600만t의 온실가스 감축이 나타나고, 이를 통한 탄소배출권 판매액은 1,00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정은은 스스로를 “산림복구 전투의 사령관”이라며 산림녹화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나 환경조성을 도외시 한 채 담당 간부와 주민들만 채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북한 매체가 “산림복구 전투 실적은 나무를 몇 대 심었는가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몇 대를 살렸는가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형식으로 흐르는 북한의 산림녹화의 문제점을 엿보게 한다.

벌거숭이산을 없애고 이를 황금산으로 만들겠다면 무엇보다 핵의 폐기를 통한 정상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대북제제의 산을 넘지 않고는 남북 산림협력이란 숲을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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