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재판 관련 일본 고위 인사들로부터 압박을 받은 뒤 “망신당하지 않도록 처리하라”는 취지로 재판 처리를 지시한 정황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됐다. /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재판 관련 일본 고위 인사들로부터 압박을 받은 뒤 “망신당하지 않도록 처리하라”는 취지로 재판 처리를 지시한 정황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됐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업무 수첩이 발목을 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법원에서 2년째 시간을 끌던 강제징용 재판에 대해 “망신당하지 않고,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처리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내용이 수첩에 적혀있었다. 그 역시 검찰 조사에서 해당 내용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이 바로 강제징용 재판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일본 고위 인사들로부터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때는 2015년 6월이다.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모시 요시로 전 총리,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 회장 등 한일현인회의 소속 일본 정관재계 원로들이 방한해 청와대를 찾았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강제징용 재판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규현 전 수석에게 강제징용 재판 처리를 지시한 것도 한일현인회의 면담이 있은 후다. 수첩엔 면담 당시 참석한 인물들의 메모도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일현인회의 회원이자 당시 일본 전범기업 측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근무했다. 검찰은 유명환 전 장관이 강제징용 재판 해결을 위해 모임 결성과 논의 내용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도 덧붙여졌다. 이듬해 4월 “모든 프로세스를 8월말까지 끝내라”고 한 것. 결국 외교부는 국민 정서와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로 악화된 여론 등을 고려해 미뤄오던 의견서를 제출했다. 사실상 정부가 대법원에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주라고 압력을 넣은 것이다. 뉴시스는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한일현인회의 면담 등을 정황 증거로 제시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루 사실을 기재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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