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이 영화 ‘증인’(감독 이한)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이 영화 ‘증인’(감독 이한)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선행을 베푼 것은 아니다. 내가 느끼는 행복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개념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낸 것도 아니다. 옳다고 생각하고, 사회적 환기가 필요한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을 뿐이다. 때로는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도망갈 생각은 없다. 그것이 배우 정우성이 생각하는 ‘소통’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1991년 광고 모델로 데뷔한 뒤 1994년 영화 ‘구미호’를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1997년 영화 ‘비트’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내며 ‘청춘스타’로 급부상한 그는 1999년 ‘태양은 없다’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무사’(2001)·‘똥개’(2003)·‘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데이지’(2006)·‘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호우시절’(2009)·‘감시자들’(2013)·‘신의 한 수’(2014)·‘아수라’(2016)·‘더 킹’(2017)·‘강철비’(2017)·‘인랑’(2018)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화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흘렀지만, 정우성은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톱스타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안정적인 연기력이 뒷받침됐지만 꾸준한 선행과 뚝심 있는 소신 발언이 그를 더욱 ‘멋진’ 배우로 만들었다.

‘증인’에서 변호사 순호로 분한 정우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에서 변호사 순호로 분한 정우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차기작 ‘증인’(감독 이한)은 ‘선한’ 정우성과 똑 닮아있는 영화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증인’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인물이 점차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 깊은 감동을 전한다.

극중 정우성은 유력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변호사 순호로 분한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에게 접근하지만 순수한 지우로 인해 오히려 위로를 받으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최근 출연작에서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선보여 온 정우성은 ‘증인’을 통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한층 깊어진 눈빛과 부드러운 감정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증인’에서 가장 마음을 흔드는 대사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다. 지우가 순호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지우의 말에 순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힌다. 순호의 눈빛과 표정은 정우성의 진심이다. 지우의 말은 순호, 그리고 정우성의 마음에 깊이 박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했다.

최근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했던 그는 ‘증인’을 통해 따뜻한 인간미를 발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했던 그는 ‘증인’을 통해 따뜻한 인간미를 발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우성은 ‘증인’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을 향한 편견 등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증인’ 속 정우성은 힘을 빼고 편하게 연기한 느낌이었다.
“그렇다. 편안함을 넘어서 자유로웠다. 다음 나의 리액션이 정해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과 캐릭터 안에서의 연기가 늘 재밌었고 촬영장에 빨리 가고 싶었다.”

-외모적으로 강렬한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데, 순박하고 소시민적인 캐릭터를 맡으면 의외로 또 잘 어울린다. ‘증인’ 속 순호도 본인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나.
“내가 입고 싶은 옷이랑 나한테 어울리는 옷이랑 분명히 다르다. 한껏 멋을 내면 사람들이 멋있게 봐주겠지 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옷은 아무 생각 없이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 하는 경우도 있다. 연기라는 게 외형적 이미지가 캐릭터를 받아들이는데 첫 번째 요소가 되고 그게 어떤 때는 허들이 된다. 나는 그걸 깨고 캐릭터의 본질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야 하기도 하고, 일상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겨있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주느냐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똥개’(2003)를 되돌아본다면, 당시 관객들은 무릎이 튀어나온 옷을 입고 김치를 담그고 아버지한테 쟁쟁거리는 정우성을 볼 준비가 안돼있었던 것 같다. 철민(‘똥개’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캐릭터)을 내가 온전히 전달 못했을 수도 있다. 일상의 찬란함에 대한 갈증, 생활 안에서의 교감에 대한 결핍 때문에 더 갈구하고 그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캐릭터로 주어진다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증인’은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 한다는 욕구보다 시나리오가 담고 있는 여운이 굉장히 오래갔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설정돼있는 공간이나 관계들이 일상성을 굉장히 크게 담고 있었고, 연기를 하면서 준비되지 않은 리액션이나 일상적인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정우성이 김향기와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이 김향기와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을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현재 정우성은 변화에 대한 용기가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계기가 있었나.
“계기보다는 대중이 정우성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영화 안이나 밖에서 깨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감시자들’ 홍보할 때 ‘런닝맨’에 나간다든지 ‘아수라’를 홍보할 때 ‘무한도전’에 나간다든지 그 안에서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특성에 맞는 누군가가 돼서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그런 것들이 겹겹이 쌓임으로써 대중이 정우성에게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깨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다. 자신감이 갑자기 생기거나, 보여줘야겠다는 의도보다 자연스럽게 정우성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관객들이 다 온전히 봤으면 하는 그런 바람으로 긴 시간 동안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극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10대 소녀와 소통하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재밌었다. 김향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나이로 바라보지 않고 김향기, 동료 배우로 바라봤다. 영화 안에서 가장 중요한 나의 파트너지 않나. 향기가 어떤 사람인지 물으려고 하지도 않고 계속 바라봤던 것 같다. 향기가 말수가 굉장히 적다. 말 안 하고 바라보는 것도 굉장히 큰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그도 나를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다.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어떻게 임하느냐를 보여주는 것도 대화보다 훨씬 나은 소통인 것 같다.”

-순호와 실제 나이도 같고, 주변에서 결혼 얘기도 많이 들을 것 같다. 또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도 놓여봤을 텐데 연기하면서 순호에게 특히 공감됐던 부분이 있다면. 
“다행히 현실과 원하지 않는 타협을 할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순호가 내게는 색다른 캐릭터고 그런 순호의 고민이 매력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런 타협에 정당성을 찾거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순호의 모습 속에 있는 거고 그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결혼에 대한 것은 순호도 나도 마찬가지다. ‘늦었어요, 안 해요’라고 하는 건 아버지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안 한다고 한 거다. 순호도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나. 하하.”

-타협할 일이 별로 없었다고 했지만, 난민 이슈처럼 자신의 생각을 전했는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올바른 생각이더라도 쉽게 밝힐 수 없는 상황이 현실과 타협하는 순호의 모습과 겹쳐지지 않았나 싶은데. (2014년부터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한 그는 지난해 예멘 난민 500여 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반대하는 대중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해야 될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당한 얘기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해이기 때문에 얘기하는 거다. 좋고 나쁨이 아니다. 또 그것을 지탄하는 사람이 나빠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해와 관점의 차이인 거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의 얘기가 있을 때 도망가지 않는 것이 결국에는 정당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라는 생각이다. 누구나 다 좋을 수는 없다. 나도 누구에게나 다 좋을 수는 없다.”

정우성이 자신을 향한 편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혀 이목을 끌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이 자신을 향한 편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혀 이목을 끌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증인’은 편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우성을 향한 대중의 편견이 속상하지는 않나. 어떻게 극복하나. 
“긴 시간 동안 편견을 온전한 나로 바꾸는 노력을 계속했던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만나기 전 어떤 정보를 통해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면서 무의식중에 설정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편견이지 않나. 우리는 모두 그런 것들을 하고 있다. 내가 남을 판단하는 것보다 누군가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질 가능성이 더 크다. 나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편견으로 세상이 돌아가니까 그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돌아올지 모른다. 나는 다행히 타인의 시각을 스스로 극복해서 이겨내야 한다는 자세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정우성에 대한 미담이 많다. 많은 동료 배우들이 정우성을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선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나.
“스트레스는 아닌데 부담은 된다. 그것도 하나의 선입견으로 작용하지 않나.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얘기만 듣고 ‘너는 좋은 사람이지?’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면 부담이 되는 거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영화 현장에서 다른 스태프들이 궁금했고, 내가 이 현장에서 즐겁게 임하는 만큼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나름 각자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현장에서 사람들, 스태프들과 소통을 하려고 하고 배우가 아니라 같은 동료로서 늘 임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들을 해주는 것 같다. 배우로서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 돼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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