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9 14:22 (월)
[기자수첩] 문재인 대통령 난(蘭)에는 특별한 게 있다
[기자수첩] 문재인 대통령 난(蘭)에는 특별한 게 있다
  • 정계성 기자
  • 승인 2019.01.25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동양란은 취임·승진 선물로 가장 선호되는 상품 중 하나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갖춰 선물 받는 이의 품격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난은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추앙받으며 공명정대한 군자나 고고한 선비에 비유해, 난을 주고받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정치권에서도 주요 인사들의 이취임 선물로 난이 자주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취임 등 기념일에 축하 난을 보냈었다. 지난 24일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67번째 생일을 맞이해 난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 때 사용되는 난은 주로 황금관 혹은 황금룡으로 불리는 동양난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가격대는 대략 10만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꽤나 흔한 난으로 대통령 이름을 걸고 보내는 것치고는 어찌보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화분도 일반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과 비교해 크게 다른 게 없다.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면, 문 대통령이 보내는 난은 ‘메이드 인 청와대’로 시중에서 구매할 수 없다는 점이다. 평소 청와대 온실에서 재배되고 관리된 난은 기념할만한 일이 생겼을 때 따로 포장돼 보내진다고 한다. 이는 청와대 직원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실제 청와대 한 관계자는 “그냥 예산으로 구입해서 보내는 게 아니었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청와대 온실에서 난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CEO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크고 작은 행사에 선물용으로 난을 애용했는데, 그 양이 많아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됐다. 명색이 대통령 선물인데 재활용 난이 보내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선물의 취지를 살리고 비용도 절감할 겸 청와대 온실에서 난을 기르는 조치가 취해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선물가격을 5만원 이내로 제한한 김영란법의 발효로, 청와대 온실 활용도가 더 높아졌다. 다만 당시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난 ‘인심’은 박한 편이었다. 선물을 남발하는 대신, 난을 고급화하고 특별히 기념해야할 날에만 보내 ‘희귀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청와대 온실 난 관리는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이어졌다. 청와대 대변인실 관계자는 기자의 질의에 “문의해 봤더니 지금도 여전히 경내 온실에서 대통령 명의의 난을 만들어서 전달한다고 한다”고 확인해줬다. 명분과 실리를 취한 좋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시스템주의자’다. 다음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도록 국정운영 시스템을 투명하게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을 막을 수 있다면 집무실을 투명유리로 도배하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이라는 것이 반드시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사소하더라도 취지에 공감하고 실리가 있으며 꾸준히 운용되면 그 자체가 시스템이 되는 게 아닐까.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재배한 난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해당 박스는 '광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