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의 CEO 조찬간담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김현철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한상의 CEO 조찬간담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태국에서 한글시험 테스트를 하면 시험장이 터져나간다. 한류가 엄청 붐이라서 젊은 애들이 한글을 배우려고 난리다. (국내에서) 국립대 국문학과를 졸업하면 취직을 못하는데, 그런 학생들을 많이 뽑아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한글 선생님으로 보내고 싶다. 여기 앉아서 ‘헬조선’ 이러지 말고 (아세안 국가에 가면) ‘해피조선’이다.”

“우리 50·60대 분들이 조기퇴직 했다고 해서 산에만 자꾸 가시는데 이런(아세안 국가) 데 가셔야 한다. 박항서 감독도 처음엔 소위 구조조정 됐는데 베트남에서 새로운 감독이 필요하다고 해서 간 것이다. 거기서 인생 이모작 대박을 터트린 거다. 지금 50·60대들이 한국에서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SNS에서 험악한 댓글만 다시지 말고 아세안으로, 인도로 가셔야 한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CEO 조찬 강연에서 쏟아낸 발언이다. 김 보좌관은 신남방정책 특별위원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서 정부의 올해 주요 추진 정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청년과 중장년층, 자영업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진출이 ‘만능키’인 것처럼 발언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보좌관은 국내 자영업자들을 향해 “베트남 쌀국수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세안 대표 음식이다. 태국 요리도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대표 요리”라면서 “그런데 한국은 왜 아세안에 안 나가나. 우리는 경제적으로 전 세계 7번째 경제대국이다. 그런데 왜 경제대국 식당들이 국내에서만 경쟁하려고 하나. 여기서 과당경쟁 하는 것보다 아세안으로 가면 소비시장이 연 15% 성장한다고 한다”고 했다.

특히 심각한 실업위기를 겪고 있는 청년층에게 해외취업을 권장한 김 보좌관의 발언은 박근혜 정부 당시 논란을 불렀던 ‘중동 일자리’ 발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세안 국가가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는 있지만, 최악의 실업률로 고통 받고 있는 청년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당시 청년 일자리 해결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부처 관계자들을 만나 “청년 일자리 해결이 얼마나 화급한 일이냐. 국내에서만 한다는 건 한계가 있다. 청년들이 해외에서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했으면 한다”며 “대한민국엔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라. ‘(청년들이) 다 어디 갔냐’고 하면 ‘다 중동 갔다’고 (할 정도로 해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청년 고용정책을 세우기는커녕 중동 얘기를 꺼낸 것은 적절치 않다. 국내에서 살 길을 찾도록 하는 게 도리”라고 비판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날 강연이 CEO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는 점에서 정부가 기업에게 무조건적인 해외 경제시장 진출만 독려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자리에는 허인 국민은행 행장, 오성엽 롯데지주 사장, 김원경 삼성전자 부사장, 이용재 삼부토건 사장, 조영석 CJ제일제당 부사장, 이연배 오토젠 회장 등이 참석했다.

야권 관계자는 “해외시장이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누가 몰라서 안 나가나.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국내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지 국내에 머물러 있는 청년이나 기업인들을 꾸짖을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주장은 ‘대한민국에 청년들이 텅텅 빌 정도로 중동 진출을 하라’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과 다를 게 없다”며 “국민들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정권을 바꿨더니 문재인 정부는 ‘나가 살면 살기 좋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희망과 미래, 발전이 있는 국가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개혁은 하기 싫고, 경제를 살리는 것도 여의치 않으니 청년들과 중장년층에게 ‘탈조선을 하라’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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