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가 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가 1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의 진술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 피해자의 진술도 일관되고 무고를 할 이유도 없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 결론이 뒤집혔다. 1심에서 10개의 공소사실 모두 무죄가 나온 것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9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쟁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위력의 행사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 5개월 만에 무죄→유죄... 무엇이 바뀌었나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지사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안 전 지사는 선고 전에도 선고 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등기)는 30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를 받는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지은 씨에 대해 안 전 지사로부터 보호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지위에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자신의 보호와 감독을 받는 수행비서를 의사에 반해 간음했다”면서 “업무상 위력이란 유무형을 묻지 않으며 폭행과 협박뿐 아니라 권세를 이용해서도 행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이 상당기간 반복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함에도 지금까지도 법적 책임은 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을 벗기는 행위에 대해서도 위력을 행사했다고 봤다. 또한 볼에 입을 맞춘 행위 역시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써 추행이라고 평가 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항소심은 1심 선고 후 논란이 됐던 ‘피해자다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를 심리할 때에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서 “피해를 당한 후 피고인을 위해 순두부 집을 알아 본 것은 수행비서의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것 역시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 상황과 진술을 종합할 시 피해자의 동의를 얻었다거나 합의 하에 관계를 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무고를 할 만한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여성단체 “더 많은 피해자들이 권리구제 받길”

안 전 지사가 법정구속되자 여성단체들은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는 조직 내 성범죄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더 많은 피해자들이 국가를 믿고 권리를 구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판결이 기존에 폭행과 협박을 동원한 성폭행만 범죄시 했던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는 게 여성계의 평가다.

김지은 씨 사건을 대응하고 있는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폭행 또는 협박 없이 조직 내 위력을 이용한 성범죄를 인정받기는 너무나 힘들다”면서 “이 판결이 기존의 성범죄 사건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나 당연한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많은 분들이 고생을 했다. 특히 김지은 씨가 마음 고생이 컸는데 평정심을 잘 유지해준 것 같다”면서 “미투 피해자의 대부분이 권력관계 성폭력 피해자인 만큼 앞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국가를 믿고 피해를 알리고 권리를 구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앞서 안희정 전 지사의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 사이에 위력관계는 존재하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씨가 피해 후 평소와 같이 업무를 보고 피고인을 지근거리에서 챙겼다면서 김씨의 진술을 배척했다.

이에 대해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1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어떤 구조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간과했다”면서 “항소심은 ‘피해자다운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는 1심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지은 씨 입장문 전문.

진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해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 함께해주신 변호사님들과 활동가 선생님들, 외압 속에서도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용기내주신 증인 여러분들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안희정과 분리된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그 분리가 제게는 단절을 의미합니다.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로 살아야했던 고통스러운 지난 시간과의 작별입니다.

이제 진실을 어떻게 밝혀야할지, 어떻게 거짓과 싸워 이겨야 할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더 고민하려 합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도움을, 힘겹게 홀로 증명해내야하는 수많은 피해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말하였으나 외면당했던,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저의 재판을 지켜보았던 성폭력 피해자들께 미약하지만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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