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나 추석 등 명절은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부적절한 대화’가 원인이다. 부디 이번 설날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즐거운 명절을 보내보면 어떨까.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은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부적절한 대화’가 원인이다. 부디 이번 설날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즐거운 명절을 보내보면 어떨까.

[시사위크=김민성 기자]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설 스트레스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53.9%)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절반 가까이(49.4%) ‘가족, 친지들의 듣기 싫은 말 때문에 명절 귀성이나 가족모임을 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은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화목을 다지는 날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부적절한 대화’가 원인이다. 본인은 ‘관심’이고 ‘덕담’이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잔소리’를 넘어 ‘상처’가 되는 경우도 많다. 자칫 도를 넘어서면 다툼의 씨앗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에 전문가들은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해선 상대방을 배려한 ‘올바른 대화법’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결혼·취업·출산 등 사생활 질문은 이제 그만~

“결혼은 언제 하니” “결혼했으니 이제 아이를 낳아야지?” “둘째는 언제쯤?” “취직은 했니?”

부모나 어른 입장에선 관심과 걱정의 표현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괴롭고 불편할 수 있다. 관심이 지나치면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어른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현실성이 떨어지고 젊은이에게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선 ‘어른들 잔소리에 대응하는 법’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예컨대 “취직은 했느냐”는 어른의 질문에 “노후 준비는 잘하고 계시느냐”고 답하는 식이다. “본인이 취직이나 결혼을 시켜줄 게 아니라면, 그저 자신의 호기심만 충족시킬 수 있는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젊은이들의 반박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화법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즐거워야할 명절이 불편함으로 남는다면 모두에게 불행이다.

그런 만큼 올해 설 명절엔 해마다 반복되는 사생활에 관한 질문 대신, 진짜 ‘덕담’을 나눠보면 어떨까.

서울가정문제상담소 김미영 소장은 사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 대신 ‘예뻐졌다’ ‘건강해 보이는구나’ ‘그간 별 일 없었지?’ 정도가 좋다고 지적한다. 취업이나 결혼처럼 어떤 ‘성과’에 대한 질문 자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칼럼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설적인 방식이나 민감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하여 가족 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 자매 사이에서 서로를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 강요하면서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부모 말 들어서 손해 볼 것 없다’라고 말하면 서로 간의 감정이 상할 수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러한 말을 하였을 때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고민을 한 후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녀는 부모에게 공손한 태도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른으로부터 불편한 말을 들었다면 화를 내거나 반발할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일수도 있다.

◇ 종교·정치 민감한 주제보다 대중적 관심사를 화두로

종교나 정치와 같은 민감한 주제로 설전이 길어져 명절을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 자리에서는 ‘의도적으로라도’ 민감한 주제를 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치 얘기는 가족간 모임에서 피해야 한다고 조언할 정도. 실제 유럽과 아시아 4개국 언어로 출판되는 와이어드(Wired)는 지난해 11월 미국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발행한 잡지를 통해 “인종과 성별, 종교를 떠나 온 가족이 모이는 추수감사절 저녁식사 자리는 언제나 ‘극도의 위험(minefield)’을 수반하고 있다”면서 “특히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슷한 시기 뉴욕포스트 역시 “온가족이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식사 자리에서 정치에 대해선 그저 입 닫고 맛있게 저녁이나 먹을 것”을 권하기도.

전문가들은 대신 건강이나 쇼핑, 여행, 스포츠 등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주제로 활용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윷놀이나 퀴즈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화법이다.

◇ “고생했다” “고맙다”… 칭찬과 배려의 대화법 필요

명절이 끝나고 이혼신청률이 높아진다거나 가정불화가 급증했다는 통계는 심심찮게 접하는 소식 중 하나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에 따른 여파다. ‘명절증후군’은 명절 기간을 전후해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정신적, 신체적 증상을 일컫는다. 이 같은 명절증후군은 기혼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부들에게 노동이 집중되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배려’라는 대화법을 조언한다. “고생했다” “내가 도울 일은 없을까” “고맙다” 등과 같이 따뜻한 말은 물론, 남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힘든 것도 아니다” “나 같은 남편 없다” “이까짓 명절음식이 뭐 그리 힘들다고” 등과 같이 배려없는 말 한마디는 파국의 불씨가 된다. 가족간 역할을 분담하거나 당번제 등을 실시해 명절 노동의 짐을 나눠질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남녀 성 갈등의 경우 ‘역할 바꿔보기’를, 정치갈등의 경우 대화 소재를 제한하는 룰을 정해보는 방법도 갈등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갑선 행복한 가정연구소 상임이사는 카카오톡과 같은 대화방에서 취업·육아·출산 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기로 하거나, 남녀의 역할 분담, 명절 때 가족끼리 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추천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명절은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는 때”라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가족의 대화시간은 하루에 30분 남짓이라고 한다. 어쩌면 명절에 가족들 간 대화로 스트레스를 받는 건, 평소에 얼굴을 보고 말을 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만큼 이번 설 명절엔 가족들에게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명절이 꼭 ‘스트레스’만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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