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지난 8~9일 경기도 양평군 한 호텔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당에 선명한 '개혁보수' 노선을 요구했다. /뉴시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지난 8~9일 경기도 양평군 한 호텔에서 열린 의원 연찬회에서 당에 선명한 '개혁보수' 노선을 요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약 7개월 간의 정치적 잠행을 마친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의 일성은 당의 '선명한 개혁보수' 노선이었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에서 '진보'의 색깔을 완전히 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내에서도 유 전 대표의 역할이 커져야 하고, 유 전 대표가 앞으로 당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기도 했다.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유 전 대표가 개혁보수 노선을 실천할 수 있는 판은 깔린 셈이다. 호남중진 김동철·박주선 의원의 '합리적 진보' 병행 및 민주평화당과의 통합론은 같은 호남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유 전 대표는 주도권을 어느정도 확보했다.

다만 유 전 대표가 자신의 개혁보수 노선을 고수하며 끝까지 당에 남을지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의문의 시각을 내놓고 있다. 당장 당내로는 분열 가능성이 나오고 있고, 당 외적으로는 '보수대통합론' 프레임을 피할 수 없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김동철·박주선 이탈 가능성

호남 중진의원들은 합리적 진보나 개혁적 보수라는 이념 정체성 문제 자체에 대해 일단 부정적이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개혁 실용정당'이라는 현재의 '탈이념적' 노선이 바람직하며 외연확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김동철 의원은 지난 8일 연찬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바른미래당이 민주당이나 한국당에 비해 지금까지 올바른 스탠스를 갖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지지율이 낮은 것은 의석수가 너무 적고, 이런 정당에 정권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국민적 의구심이) 크다고 본다"라며 "우리는 지금같은 노선을 계속 가지만, 일단은 당의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선 의원도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융복합 시대에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으로만 당의 정체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의 지지율이 지금 정체 상태에 있는 것은 진보냐 보수냐에서 색깔을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은 그들(유승민)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의 평화당과의 통합론에 대해 전북이 지역구인 김관영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 지도부는 "지금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광주가 지역구인 권은희 의원은 오히려 '개혁보수' 노선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바른정당 출신의 한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제 문제 등에 대해 김동철·박주선 의원의 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그럼에도 두 의원이 '보수'라는 정체성을 꺼리는 것은 결국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민심 때문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

바른미래당이 내년 총선까지 '개혁보수' 노선을 끌고 갈 경우, 두 의원이 거취에 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바른미래당 호남중진인 김동철·박주선 의원은 지난 8~9일 연찬회에서 합리적 진보 노선 병행 및 외연확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뉴시스
바른미래당 호남중진인 김동철·박주선 의원은 지난 8~9일 연찬회에서 합리적 진보 노선 병행 및 외연확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뉴시스

◇ '한국당 2중대' 및 '보수대통합' 프레임

유 전 대표는 연찬회에서 개혁보수 노선에 대해 "우리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민주당이나 정의당보다는 지금 낡고 썩은 보수에 머물러 있고 아직도 과거에 머무른 한국당"이라며 "한국당보다 더 경제·안보를 잘 챙기고,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제대로 견제하고 바로잡는 강력한 개혁보수 야당이 되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라고 설명했다. 우선은 한국당을 대체하는 제1야당으로 거듭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같은 개혁보수노선은 민주당이나 평화당, 정의당 등 이른바 '범여권'으로부터 '한국당 2중대'라는 공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민의당도 바른정당과의 통합국면에서 '보수대야합'이라는 정치권의 비난을 받아왔다.

유 전 대표는 특히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선(先) 한반도 비핵화 및 굳건한 한미동맹'을 주장하며 큰 틀에서는 한국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아울러 '개혁보수가 한국당과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는 "개혁보수를 늘 주장해온 사람으로서 한국당과 달라야 하는 것이 제가 정치하는 목표는 아니다"라며 "무엇이 국가를 위해 옳으냐 하는 주장을 하다보면 한국당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통합론에 대해서도 여지를 열어뒀다. 유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 견제를 위해 보수가 힘을 합치는 부분은 당의 지지도와 관계없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당이나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비판적인 정치세력, 시민단체와의 협력 등 필요하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도 유 전 대표의 개혁보수 노선에 부담을 느끼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연찬회 결과 브리핑에서 "개혁적보수 혹은 중도 노선을 강화하면 마치 한국당과의 연대 및 합당을 시사하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 9일 연찬회 종료 후 국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 전 대표는 '당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당을 만든 사람이다. 창당 1주년을 계기로 바른미래당에서 내년 총선까지 확실히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전 대표 측이 이를 반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결국 분당 수순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유 전 대표가 자신의 행보가 한국당 전당대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여전히 보수대통합론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신의 개혁보수 주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당에 남아있는 옛 바른정당 출신들 때문이라도 거취에 대해 다시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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