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 돌풍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개봉 4주차에 접어들은 오늘(15일)까지도 30%가 넘는 예매율을 기록하면서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업계에선 누적 관객 수 1,500만명 돌파도 문제없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고 있다.

예측이 들어맞을 경우 극한직업은 5년 전 개봉한 ‘명량’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수를 불러들인 영화 ‘2위’라는 금자탑을 쌓게 된다. 지난해 연말과 설날을 겨냥해 개봉한 제작비 100억대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한 뒤라 극한직업이 거둔 성과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과연 이런 결과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감히 단언컨대 계룡산 점쟁이 몇몇을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이다. 제작 단계부터 초미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닐뿐더러, 장르마저 어느새 충무로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코미디라는 점 등 극한직업은 ‘천만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작품이었다.

또 극중 마약반을 진두지휘하는 고 반장 역의 배우 류승룡이 ‘흥행 보증 수표’에서 ‘흥행 부도 수표’로 전락한 상태였다는 것도 선뜩 대박을 점치기 어려운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가정은 개봉과 동시에 모두 과거형이 됐다. 그것도 어느 하나 적중한 게 없는 완벽한 기우로 드러났다. 핸디캡으로 보였던 요소들은 비슷비슷한 최근의 한국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발현 돼 관객을 끌어 모으는 힘이 됐다.

더 이상 관객들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영화에 쉽게 매료되지 않는다. 2015년 흥행작인 ‘내부자들’의 영향 탓인지 권언유착 등을 다룬 권력형 비리는 충무로의 흔하디흔한 소재가 됐다. 스타 셰프의 요리도 자주 먹으면 질리는 법이다. 감독과 배우(심지어 배우도 겹친다)만 달라졌을 뿐, 예상 가능한 전개와 기시감이 드는 시퀀스로 채워진 작품은 졸작과 범작의 경계선에 서기 십상이다.

돈 좀 들인 영화라 해서 관객들이 찾지도 않는다.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시각적인 볼거리는 분명 중요하다. 그렇다고 서사와 캐릭터가 갈팡질팡하는 작품을 미술과 그래픽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인정할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영상은 엄연히 다르다. 그럴싸한 치장으로 연출력의 한계를 덮기엔 요즘 관객들의 수준이 너무 올라갔다.

코미디 영화를 만들라는 얘기는 아니다. 마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처럼 엇비슷한 영화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는 충무로가 관객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의 타성을 깨지 못한다면 지난 연말과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걸 염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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