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남북 사이 철도 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도 했다.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다.

◇ 제제완화 의미로 남북경협 제시

양 정상의 통화로 확인되는 것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제재완화’ 단계를 논의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북미협상의 기초인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항구적 평화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단계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하고, 다음으로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과 ICBM 일부를 폐기하고 미국은 연락사무소 설치와 일부 제재완화를 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현 북미협상은 이미 1단계를 넘어 ‘플러스 알파’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벌이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고민은 ‘대북 경제제재’를 어느 수준으로 풀어줄 것이냐에 있다. 북중 밀무역까지 봉쇄해낸 세컨더리 보이콧과 같은 미국의 독자제재를 풀어주는 것은 마지막 단계에서의 얘기다. 그렇다고 북미협상의 결과를 가지고 유엔 등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의 역할을 활용하라”는 주문은 이 대목에서 의미를 갖는다. 즉 제재완화의 일환으로 남북경협을 북한에 제시하라는 것이다.

20일 취재진과 만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서서 문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며 “비핵화 상응조치를 내놓아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 트럼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의 종류를 우리가 늘려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2차 북미정상회담의 과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에서 유행하고 있는 김정은 컷과 트럼프 컷 /AP-뉴시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베트남에서 유행하고 있는 김정은 컷과 트럼프 컷 /AP-뉴시스

미국 조야에서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중국의 관여가 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핵심에는 주한미군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꾸준히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해왔는데, 그 대상에는 미국의 전략자산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지원을 맡는 대신, 미군은 한반도에서 떠나라는 주장인 셈이다. 사드 배치 후 중국이 보였던 반응에서 그 의도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실제 1차 북미정상회담 일정발표 후 미국에서는 중국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회담에 앞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한반도 비핵화’에 목소리를 내자 위기감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차례 회담을 연기하며 그 이유로 중국 배후설을 제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이끌면서도 북중 접점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를 깨고,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이 해양세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결과다. 무엇보다 중국이 아닌 한국을 통한 ‘제재완화’는 미국 조야를 설득하는데 용이한 측면이 있다.

관건은 북한의 결단이다. 일단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비핵화와 주한미군은 관련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를 북한에 가져다 놓으라”고 까지 말했다. ‘동아시아 안보 균형추’로서 주한미군 주둔의 의미를 인정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과 일부분 선을 긋고 동아시아 세력재편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북미 간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매번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하는 등 시 주석의 눈치를 봐왔다. 만약 일부 비핵화를 계기로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을 의도라면, 보수진영의 지적처럼 과거 실패했던 KEDO 사업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어떤 결정을 보여줄지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역사적인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은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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