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지난 1월 삼성SDI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30대 노동자(황모 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가운데 근로복지공단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아울러 삼성SDI 또한 “기본적인 안전장비나 사전 안전교육이 없었다”는 황씨의 생전 증언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 근로복지공단, 황씨 사망하자 역학조사 실시
삼성SDI 반도체용 화학물질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노동자 황모(32) 씨가 지난 1월 29일 또 백혈병으로 숨졌다. 당시 황씨의 부서가 생산직이 아닌 연구원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황씨의 사망 사실을 알렸던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따르면 황씨는 2014년 5월부터 삼성SDI 수원사업장 클린룸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반도체용 화학물질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황씨의 작업 공간은 벤젠과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한 여러 발암물질에 노출돼 있었다.
이후 2017년 12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황씨는 지난해 3월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에 산업재해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황씨 사망 직후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이 황씨가 숨진 직전까지도 역학조사 여부조차 알려오지 않았다”면서 비판했다.
하지만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공단은 황씨가 숨졌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야 산재 조사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 파장이 커지고 있다. 통상 산재 신청이 접수되면 6개월 이내에 역학 조사를 의뢰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공단 측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황씨에 대한 역학조사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좀 더 빨리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면 황씨와 유족들이 경제적으로 나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커지고 있다.
◇ 쉬쉬하는 삼성SDI, 공단 조사 결과만 기다리나
문제는 삼성SDI 측에서 황씨 사망과 관련, 이렇다 할 입장이나 사후대책 발표가 없다는 것이다.
반올림에 따르면 황씨는 아무런 보호 장치도 제공되지 않은 환경에서 업무를 진행했다. 수동 작업으로 일했던 황씨는 보호도구는 물론 환기도 안 돼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일했다. 또한 사전에 발암물질을 다루는 것과 관련, 아무런 안전교육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본적인 보호 장치도 전무했던 것과 관련, 삼성SDI는 “사실관계는 확인해 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자사 연구원들에게 안전장비 제공이나 안전교육 실시 여부 등을 ‘모른다’는 식으로 해명하는 건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황씨 사망 후에라도 남아 있는 연구원들에 대한 사후 대책 등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삼성SDI가 공단 측의 역학조사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다.
이에 대해 반올림은 “2007년 황유미 씨의 사망이 알려진 뒤로 1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삼성의 전자계열사들이 생명이 위태로운 방식으로 일을 시키고 있다”면서 “그동안 삼성전자와 삼성전기·삼성SDI 노동자 중 반올림에 제보한 백혈병 피해자만 104명이고, 이 중 60명이 사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 걸린다는 백혈병으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데도 기업은 화학물질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와 공단은 눈치보지 말고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사위크>는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삼성SDI의 입장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편 지난해 옴부즈만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 삼성전자 기흥·화성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 907종 중 407종(45%)이 영업비밀 물질을 포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