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들은 요즈음 ‘반려(伴侶)’의 참뜻은 전혀 모른 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온갖 만행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들을 연일 접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금수저 출신이나 졸부들 및 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들의 서로 협력해야할 ‘반려인간’에 대한 갑질, 키우던 ‘반려동물’들의 무책임한 유기(遺棄) 행위, 사설 동물보호단체의 유기동물에 대한 무분별한 안락사(安樂死) 및 선의로 모아진 후원금의 개인적인 유용 등에 황망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진정한 ‘반려(伴侶)’의 참뜻과 식물까지도 포함한 ‘반려생물’에 대해 진한 감동을 주는 몇몇 일화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반려’의 참뜻

좁은 의미로 ‘반려’의 사전적인 뜻은 ‘짝이 되는 친구’이나, 한자를 해체해 그 참뜻을 유추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첫 번째 글자인 짝 ‘반(伴)’은 사람을 뜻하는 ‘인(亻)’과 반쪽을 뜻하는 ‘반(半)’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자인 짝 ‘려(侶)’ 역시 사람을 뜻하는 ‘인(亻)’과 등뼈, 즉 연결된 등골들의 집합체를 뜻하는 ‘려(呂)’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인간도 동물 및 식물과 함께 지구촌 생명공동체의 한 일원이라는 것이 자명해졌습니다. 따라서 ‘인(亻)’을 확장해 동물과 식물까지 포함한 보다 넓은 안목에서 ‘반려(자)’의 참뜻은 ‘인간끼리만이 아닌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지구촌생명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새기면 좋겠습니다.

◇ ‘반려인간’에 관한 일화

이제 <오직 할 뿐> (물병자리, 2001년)에 들어 있는 ‘반려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일화부터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1984년 무렵, 제자인 무량 스님이 프로비던스 선센터를 방문하기로 하자, 또 다른 제자인 도륜 스님이 숭산 선사의 전용차를 몰고 마중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내의 한 교차로에 접근했을 때 신호등이 마침 녹색으로 바뀌자 주위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가 트럭과 충돌한 일이 벌어져 차가 심하게 찌그러졌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선사께 입실해 독대(獨對)하는 자리에서 교통사고에 대해 사실대로 보고를 드리니, 선사께서, “오, 자네 몸은 다친 데는 없는가?”하고 묻자, 도륜 스님이 “예, 스님. 그런데 차가 심하게 찌그러졌습니다”라고 답하자, 선사께서 다만 “그래, (요즈음 정비 기술이 좋으니) 곧 새 차처럼 수리되어 나오겠군!”이라 답하며 제자를 안심시키시고는 평소처럼 참선프로그램을 진행하셨다고 합니다. 참고로 필자의 독대 요청을 두 차례나 허락하시고 매우 자상하게 점검해 주셨던, 숭산(崇山) 선사께서는 서양인들의 참선 수행에 적합한 공동체를 위하여 관음선종을 새롭게 창종하셨으며 늘 솔선수범하시면서 많은 멋진 일화들을 통해 제자들을 크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덧붙여 유교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孔子)의 ‘고귀한 주인’이니 ‘미천한 하인’이니 하는 분별없는 ‘반려인간’에 대한 견해를 잘 엿볼 수 있는 유사한 일화가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에 들어 있습니다. 

“조정(朝廷)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해 마구간[구(廐)]에 불이 났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공자께서 다만 ‘다친 사람은 없는가?’라고만 묻고, (당시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 ‘반려동물’에 관한 일화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조선시대 야사(野史)를 모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편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세종대왕 때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지낸 윤회(尹淮, 1380-1436)가 젊은 시절 시골을 방문했을 때 모욕을 당하면서도 지혜롭게 ‘반려동물’을 살린 멋진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여관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난감해 하며 잠시 마당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주인집 아이가 장남감인 줄로 알고 큰 진주를 들고 나왔다가 마당 가운데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흰 거위가 진주를 먹이로 착각해 즉시 삼켜버렸다. 잠시 후 주인이 진주를 찾다가 찾지 못하자 윤회가 훔친 것으로 의심하여 그를 밧줄로 묶고 다음 날 날이 밝으면 관아(官衙)에 고발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윤회는 이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단지 ‘부디 저 거위도 내 곁에 매어주시오’라고 부탁하였다. 다음날 아침 진주가 거위의 배설물 속에서 발견되자 주인이 부끄러운 낯빛으로 사죄(謝罪)하며 ‘어제 왜 사실대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윤회가 ‘만일 내가 어제 말했다면 주인장께서 필히 거위의 배를 갈라 진주를 찾으려 했을 것이오. 그래서 내가 모욕을 참고 기다렸던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참고로 이 일화는 본래 인도의 마명보살(馬鳴菩薩, 100?-160?)이 짓고 5세기 초 후진삼장(後秦三藏)인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 번역한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에 들어있는, 불살생(不殺生)의 대상으로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촌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동물까지도 포함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철저히 계율을 지키려는, 수행자의 본보기인 ‘아주비구(鵝珠比丘)’에 관한 감동적인 일화(逸話)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이 일화에서는 안타깝게도 거위가 죽게 됩니다만.

◇ ‘반려식물’에 관한 일화

불살생의 대상으로 풀[초(草)]까지도 포함해 철저히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의 본보기인 ‘초계비구(草繫比丘)’에 관한 감동적인 일화 역시 <대장엄론경>에 들어있습니다.

“어느 때 뭇 비구승들이 넓은 들판을 지나가다가 도적떼를 만나 입은 옷을 다 빼앗겼다. 그런데 한 도적이 ‘살려두면 관가에 알릴 테니 모두 죽여 버리자’라고 하자, 일찍이 출가했던 경험이 있는 다른 도적이 ‘비구의 계율에 따르면 풀 한 포기도 상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적떼는 벌거벗은 비구승들을 풀로 묶어 놓고 가버렸다. 이후 비구승들은 낮에는 뜨거운 햇빛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했으며 밤에는 곤충과 짐승들의 괴롭힘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잘못 몸을 움직이다가 풀이 상할 것 같고 만일 풀이 상하면 계율을 어기는지라 차라리 목숨을 잃을지라도 계율을 지키기로 하고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국왕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풀에 묶여있는 비구승들을 목격하고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사문이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매우 연약한 풀을 끊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만 불제자(佛弟子)로서 계율 지키기 위해 풀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국왕은 불법(佛法)을 호지(護持)하며 목숨을 돌보지 않고 계율을 철저히 지키려는 비구승들을 크게 찬탄하며 묶었던 풀을 상하지 않고 풀어주게 명하고 마침내 불교에 귀의하였다.”

참고로 ‘초계비구’와 ‘아주비구’에 관한 일화는 조선 중엽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던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제40절의 주해(註解)에서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계율을 소중히 여기기를 석가세존 대하듯이 하면 세존께서 항상 곁에 계시는 것과 다름없네. 그러므로 모름지기 ‘초계비구’와 ‘아주비구’로써 그 본보기를 삼아야 할 것이네.” 

사실 필자의 견해로는 조선 시대 배불정책의 여파로 크게 느슨해진 출가수행자의 계율 정신을 새롭게 바로잡기 위해 이 일화들을 요긴하게 인용하셨다고 여겨지며, 어쩌면 오늘날 우리 모두 역시 새겨야할 생명존중 정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작은 정원 가꾸기

끝으로 지난 1월 말 보도된 부산시 동물복지지원단이 조사한 동물유기 현황을 잘 드러내고 있는 구체적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부산지역에서 한 해 방치되는 유기견은 4,000여 마리 정도인데 입양된 경우는 16%이고 자연사는 36%, 안락사는 12%였다고 합니다. 또한 유기묘의 경우는 한 해 3,000여 마리 정도인데 이 가운데 입양은 10%이고, 거의 대부분인 80%는 보호소에서 자연사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국이 일일생활권인 요즈음 다른 지역도 상황이 심각하기는 마찬가지겠지요.

한편 사시사철 햇볕이 잘 드는 필자의 연구실 창가는 단지 가끔 물만 주는데도 공기정화 능력이 탁월한 산세베리아와 스킨답서스를 포함해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꽃기린 및 다육이 등의 ‘반려식물’들로 작지만 멋진 정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정원을 갖춘 것은 아니고 화분 한 개씩 창가에 놓고 키우다가 웃자란 녀석들을 잘라서 물에 담갔다가 뿌리가 내리거나 또는 분갈이를 하면서 포기 나누기를 통해 새 화분에 심다보니 어느새 창가를 완전히 점령하며 작은 정원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우선 화초들과 마주하고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하루를 차분하게 전망하곤 합니다. 덧붙여 청소해주시는 분께서 하루는 필자의 연구실이 다른 연구실에 비해 별로 먼지가 없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 만일 실내에서 ‘반려생물’을 키우고 싶은 분이 있다면, 입문단계로 우선 공기도 정화해주고 반려동물로 인해 파생되는 제반 문제도 거의 없으며 비용도 매우 저렴한 일석삼조인 ‘반려식물’부터 키워보실 것을 적극 권해드립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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