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 청구한 보석이 조건부로 허가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재판부의 허가 없이는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 청구한 보석이 조건부로 허가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재판부의 허가 없이는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된 지 349일 만이다. MB의 항소심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1부에서 6일 보석 청구를 허가한 것이다. 구속만기일이 내달 8일로 다가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법원 인사로 재판부가 새로 변경된 데다 심리하지 못한 증인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선고가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뒤따랐다. 따라서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보석의 타당성을 수용했다.

◇ 사실상 자택 구금… 병원 갈 때도 허가받아야

단, 조건이 달린 임시 석방이다. 재판부는 10억원의 보증금 납입과 함께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했다. 첫 번째 조건은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법원의 허가 없이는 외출할 수 없다. 진료차 병원을 가야할 때도 그 이유와 방문 병원을 기재해 보석 조건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는 복귀 보고를 해야 한다. 당초 MB 측에선 서울대병원을 주거지에 포함할 것을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거부했다. ‘병보석’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은 셈이다.

MB로선 다소 섭섭한 상황이다. 그는 보석 허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건강 악화를 줄곧 주장해왔다. 전문의 소견서로 확인된 병명만 9가지라는 것, 이중 수면무호흡증의 경우는 돌연사 위험이 있다는 게 MB 측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치료를 위해 석방해야 할 만큼 위급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구치소 내 의료진이 MB의 건강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나아가 “만약 입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보석을 취소하고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까다로운 보석 조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려를 표시했으나,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신청한 보석인 만큼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판부의 까다로운 보석 조건에 우려를 표시했으나,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신청한 보석인 만큼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 뉴시스

사실상 자택 구금과 같다. 이에 재판부는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앞서 MB는 1심에서 횡령 240억원, 뇌물수수액 59억원이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중형이 선고된 만큼 보석을 위해선 “자택 구금에 상당하는 엄격한 조건”이 필요했다. 재판부는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 구금할 수 있다”고 못을 박았다.

재판부가 제시한 두 번째 조건은 배우자와 직계 가족, 변호인 외에는 자택에서 접견하거나 통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매주 한 차례씩 시간별 활동 내역 등을 담은 보석 조건 이행 상황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보석 조건에 MB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차라리 내달 8일까지 구속만기를 기다리는 게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재판부에서 10억원의 보석금을 제시한데 대해 “증거인멸 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변호인에게 물을 만큼 불쾌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훈 변호사는 보석이 허가된 직후 취재진과 만나 “(MB에게) 대통령일수록 오해 사는 일을 하지 않고 모범을 보여 달라는 뜻으로 (재판부가) 보석 조건을 가혹하게 한 것이라 설명”한 사실을 밝히며 “보석 조건이 엄중하지만 (MB가) 못 지킬 정도는 아니라서 감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MB는 재판 증인이나 사건 관련자들을 만날 의사가 전혀 없다. 다만 앞으로 “MB가 과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살릴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데 보석 허가의 의미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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