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왼쪽부터)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과 달리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법원의 보석 허가 기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법원은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은 기각했다. 그러나 건강상 이유로 보석을 청구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피고인 방어권을 이유로 허가했다.

◇ ‘피고인 방어권’ 주장한 양승태... 보석 불허 이유는?

사법농단 핵심 주범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5일 보석 청구가 기각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으로 일하면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재판거래’ 등 불법적 업무를 지시하거나 승인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첫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보석 청구 이유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고, 형이 선고되지도 않은 점, 고령인 점 등을 들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헌법상 보장된 피고인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296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기록을 검토하는 한편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는 등 상당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구속영장 제도가 무죄 추정의 원칙,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이 무시된 채 보복 감정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면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증거인멸 우려가 높다고 봤다.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컴퓨터의 디가우징(자기장을 이용한 데이터 삭제)을 지시한 일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의 최종결정권자로서 혐의가 중대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1심 선고 전 피고인 방어권을 주된 보석 신청 이유로 들었음에도 재판부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다. 이에 따라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 양 전 대법원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5일 오전 10일에 열린다.

◇ MB, ‘건강 악화’ 보석 신청... 법원 “피고인 방어권 차원”

이와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신청 주된 이유는 건강 악화였다. 1년 이상(349일) 수감되면서 각종 질병이 악화됐다는 주장이다. 특히 돌연사 우려도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 변호인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수감 중 수면 무호흡증과 기관지 확장증, 역류성 식도염, 제2형 당뇨, 탈모, 황반변성 등 9가지 질환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이 보석 신청을 만류했지만, 의사의 진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보석을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6일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한 재판부는 허가 사유로 ‘건강 악화’가 아닌 ‘피고인 방어권’을 들었다. 어차피 구속 만기일 안에 재판을 마치기 어렵고, 구속기간 만료 후 석방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즉, 구속만료 후 석방은 주거 제한이나 접촉인 제한이 없는 반면, 보석을 통해 임시 석방을 하면 구속영장 효력이 유지돼 언제든 다시 구금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법원의 허가 없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배우자와 직계 혈족(그 배우자), 변호인 외 누구도 자택에서 접견하거나 통신을 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병원 방문을 요구했지만 재판부는 거부했다. 그러면서 “만약 입원 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보석을 취소하고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보석 허가 결정을 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질병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구속 만기일에 선고를 한다고 해도 43일밖에 남지 않았다. 심리하지 못한 증인 수를 감안하면 만기일까지 선고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평가가 갈리고 있다. 이미 1심 재판을 통해 대부분의 증거들이 시시비비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의 전략에 법원이 대응도 못하고 휘둘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엄격한 조건 하의 보석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증거인멸이 가능한 점을 이유로 실효성의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지난 6일 보석 허가가 되면서 구속 349일만에 석방됐다. 재판부는 아울러 보석에 대한 보증금 10억원을 내라고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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