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서울시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검찰 고발 등으로 기로에 섰다. /뉴시스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서울시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검찰 고발 등으로 기로에 섰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불거진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대대적인 개혁에 맞서 정부·여당과 각을 세워왔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가 결국 사면초가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아이들과 학부모를 볼모로 삼고 정치세력화까지 시도한 결과다.

한유총은 지난 4일, 개학 시즌을 맞아 ‘개학연기’ 집단투쟁을 실행에 옮겼다. 한유총의 주장보단 적은 유치원이 참여했지만, 파문은 상당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유치원 대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피해를 입은 학부모가 나왔고, 다른 학부모들도 적잖은 속앓이를 해야했다.

이처럼 한유총이 아이들과 학부모를 볼모로 잡고 집단행동에 나서자, 정부는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현장조사를 통해 일방적 개학연기에 동참한 유치원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고발 조치했다. 또한 개학연기에 따른 피해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며, 앞으로도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한유총의 집단 개학연기를 향한 여론은 싸늘하기만 했다. 한유총이 실제로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놓아버린 만큼, 더욱 강경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결국 한유총은 집단 개학연기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고, 이를 전면 철회했다. 하지만 끝까지 교육부 책임론을 거론하며 진정한 반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유총이 일으킨 파문은 그 이상의 역풍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집단 개학연기 다음날인 지난 5일, 한유총의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한유총이 집단 개학연기를 철회했지만, 아이들 및 학부모를 볼모로 삼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유총의 설립허가 취소 근거는 공익을 해쳤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공익을 해치는 행위를 한 법인은 주무관청이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집단 개학연기와 반복되는 집단휴원 및 집단폐원 선포, 온라인 유치원 원서 접수·추첨 시스템 ‘처음학교로’의 집단적 거부 등을 공익을 해친 근거로 제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한유총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등 설립허가 취소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해왔다. 한유총의 설립허가 취소가 확정되기까지는 청문 절차 등이 남아있으나,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이 완강하고 한유총과의 대립각도 계속되고 있어 반전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한유총을 향한 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의 설립허가 취소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도 한유총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6일 한유총 본부 및 경남경북부산경기지부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신고를 접수한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집단 개학연기 과정에서 한유총 간부가 지역 유치원 원장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보고 있다. 해당 문자는 “배신의 대가가 얼마나 쓴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서로 총질 안 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다.

서울시교육청, 공정위에 이어 검찰도 움직일 태세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한유총을 고발한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했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한유총이 공정거래법, 유아교육법, 아동복지법 등을 위반했다며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이처럼 정부 및 수사당국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한유총은 와해조짐까지 보이며 빠르게 입지를 상실하고 있다.

과거 한유총에 소속돼있다 탈퇴한 일부 관계자들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유총의 실체 등을 폭로했다. 한유총이 특정 대형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그릇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집단 개학연기 참여가 저조했다는 점도 한유총이 동력을 상실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한유총은 당초 1,500곳 이상의 유치원이 개학연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으나, 실제 교육부 전수조사 결과 239곳이 개학연기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응답을 하지 않은 유치원을 포함해도 486곳에 불과했다. 특히 싸늘한 여론과 정부의 강경한 대응, 그리고 한유총 간부의 협박성 발언으로 한유총으로부터 등을 돌린 유치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와 한유총 온건파가 탈퇴해 설립한 한국사립유치원협의회가 정부의 협상파트너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마이웨이’를 이어가던 한유총은 자신들의 무리수로 ‘자업자득’의 결과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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