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연장 당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연장 당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올해를 포함해 4년간 유지된다.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었지만, 소득공제 혜택을 주로 받는 직장인들의 반발로 3년 더 미뤄진 것이다.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내에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폐지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1999년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그 도입 취지를 충분히 달성했다. 그러나 민심의 역풍을 두려워한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공학적으로만 소득공제 제도를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은 민주당·기획재정부·청와대가 비공개 협의를 통해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올해 일몰이 도래하지만, 근로자의 세 부담 경감을 위한 보편적 공제제도로 운영돼온 점을 고려해 일몰을 3년 연장하기로 했다. 소득공제율과 공제 한도도 현행제도를 원칙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년 전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도입한 것은 신용거래를 정착시키고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당초엔 2002년 11월 30일을 일몰 시한으로 두고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었지만 번번이 국민 여론에 부딪혀 현재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그 사이 신용카드 결제 비중은 70%를 달성했고,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종합소득세 확정 신고 인원은 1999년 134만명에서 2014년 505만명으로 늘어 자영업자 과표양성화라는 목표를 충분히 이뤘다는 평가가 나왔다. 오히려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의 신용카드 공제액이 가장 높게 나타나 조세감면 혜택이 고소득 집단에 집중되는 편향성이 있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지적이 제기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4일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그 축소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감면제도 전반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발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올해를 포함해 4년 더 연장된다. / 뉴시스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올해를 포함해 4년 더 연장된다. / 뉴시스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한국납세자연맹은 “근로소득보다 금융소득 등 자산소득을 우대하고,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의 과표 양성화율 차이를 방치해 세금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한국 세제의 가장 큰 문제”라며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는 서민과 중산층 근로자의 삶을 더 힘들게 할 것이다.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등 근로자증세를 시도한다면 납세자연맹을 중심으로 근로소득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세금 문제는 연말정산 시기인 연말에 결정되거나 이슈가 되는 반면, 이번 사안에 대해 당정이 비교적 빠른 결정을 한 것은 그만큼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심의 반발이 큰 사안을 결정했을 경우 정부여당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가 자칫 ‘서민증세’ 프레임에 휘말리게 될 경우 저항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는 것은 사실상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증세를 추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지적이 나왔다.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지니고 있는 역진성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추진 중인 ‘제로페이’ 등 기타 직불카드 소득공제를 늘리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해도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지만, 당장 여론의 반발에 부딪쳐 경제부총리의 말과 정부 정책이 엇갈리게 됐다는 비판이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세금감면제도라는 특성상 소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감면을 받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역진적이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시절에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금감면제도를 많이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것이 갖고 있는 역진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잘 모르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원장은 그러면서 “기획재정부 스스로 작년 연말에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1년만 연장하고 폐지하겠다고 했었는데 (다시 연장하기로 한 것은) 명백한 정치적 고려이자 정치적 결정”이라며 “불과 일주일 만에, 더군다나 한 나라의 경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경제부총리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내지는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가 정책을 바꿔버리니까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 심각한 훼손이 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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