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입장을 밝혔던 리용호 외무상(우)과 최선희 부상(좌). /AP-뉴시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입장을 밝혔던 리용호 외무상(우)과 최선희 부상(좌).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강경발언을 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관영언론 등이 아닌 당국자가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존 볼턴 보좌관 등 강경파를 내세워 ‘일괄타결’을 촉구하는 미국에 대해 맞불을 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15일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부상은 외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런 식으로 협상에 나설 생각이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또한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며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 “폼페이오와 볼턴 때문에 협상 결렬”

이와 관련해 특히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최 부상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비타협적인 요구를 하는 바람에 미국의 태도가 강경해졌다”며 “이들이 적대감과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우리와는 매우 다른 계산을 갖고 있음을 매우 분명히 이해했다”고도 했다.

나아가 최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향후 행동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며 중대선언을 예고했다. 공식성명에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에 대한 향후 계획도 담길 것으로 최 부상은 전했다. 구체적인 발표 시점은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개막을 알리는 당 회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당국의 태도는 최근 미국의 강경 압박에 대한 대응차원으로 풀이된다. 하노이 협상 결렬 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존 볼턴 보좌관을 전면에 내세워 ‘선 비핵화 후 상응조치’ 일괄타결을 촉구했다. 그간 대북협상을 주도하며 온건파로 분류됐던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북특별대표까지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바 있다.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유로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한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을 지목했다. /AP-뉴시스
최선희 부상은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유로 확대정상회담에 배석한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을 지목했다. /AP-뉴시스

◇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 기대

전날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의 정례 패널보고서도 북한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 대북제재위는 패널 보고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카퍼레이드에 이용됐던 벤츠 리무진 차량을 포함해 3대의 고급차량에 대해 대북제재 위반 물품으로 지목했고, 선박 간 환적을 통해 석유·석탄을 거래하는 등 북한이 대북제재를 계속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무부는 비건 특별대표가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대북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논의했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피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간적 유대관계를 강조해 탑다운 형태의 담판 여지를 남긴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최 부상은 “두 최고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한정우 부대변인은 “최선희 부상의 발언만으로 현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며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다시 입장문을 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중재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침은 아세안 3국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귀국 후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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