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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이 간다
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안진걸이 간다⑲] KT 통신구 화재 ‘소상공인 보상’이 던지는 의미
2019. 03. 15 by 이미정 기자 wkfkal2@sisaweek.com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기자는 지난 11일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로 피해를 입었던 아현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시사위크
기자는 지난 11일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로 피해를 입었던 아현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만났다. /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가 발생한지 어느덧 4개월째를 맞았다. 지난해 11월 26일 발생한 화재로 서울 5개(중구·용산·서대문·마포·은평구) 지역 등에서 유무선 통신장애가 발생하면서 인근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화와 카드 결제가 먹통이 되면서 영업상 큰 손실을 입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상인들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11일 기자는 아현시장을 찾았다.

◇ 유례 없는 통신대란, 소상공인들 울었다  

아현시장에서 속옷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일주일 정도 카드 결제나 전화가 먹통이 됐었다”며 “카드 결제가 안 되면서 여러 손님을 떠나보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상인 B씨는 “요즘은 1,000원도 카드로 결제하는 세상이 아니냐”며 “시장에 올 때도 카드만 덜렁 들고 오는 사람이 많다. 카드 결제가 안 되면서 피해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시장 근방의 닭강정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C씨는 “전화가 먹통에 돼 주문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며 “우리는 나중에 가게전화를 휴대폰과 연동해 썼지만 이같은 방법도 몰랐던 상인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지 4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상인들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뉴시스

당시 통신장애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인들은 주요 영업수단인 전화와 카드단말기, 포스기(판매시점 정보관리) 등이 먹통 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에선 5만명 가량의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산했다.

KT는 소상공인들에게 별도의 영업 손실 보상방안을 마련키로 결정한 상태다. 통신사가 통신장애와 관련해 소상공인의 영업손실을 배상해주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함께 아현시장을 찾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이전까지 통신사는 통신장애가 발생했을 때는 소정의 요금감면 보상만을 마련했다”며 “통신서비스가 안 된 것에 대해 좁은 의미의 책임만 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KT는 서비스장애에 대한 1차적인 보상안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통신서비스에 기대 먹고 사는 소상공인들의 영업상의 피해까지 보상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 통신사, 소상공인 영업손실 첫 피해보상 사례

KT는 피해지역 유무선 전체 가입자에게 1개월 요금 감면 정책을 우선 시행하는 한편, 소상공인에 대해 추가 보상을 결정했다. 보상 기준과 규모를 논의하기 위해 사회적 기구인 ‘상생보상협의체’가 꾸려져 1월 15일 발족했다. ‘상생보상협의체’는 KT, 소상공인연합회, 시민단체, 정부관계자 등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협의체다. 민생경제 시민활동가인 안 소장은 협의체 간사로 참여 중이다.

통신장애와 관련해 이 같은 협의체가 꾸려진 것도 처음이다. 상생보상협의체는 치열한 논의를 거쳐 지난달 15일 보상 범위와 피해 접수 방법, 접수서류 양식 등을 확정했다. 보상 대상 범위는 당초 계획보다 확대됐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보상 지급 대상은 여신전문금융업상 영세 중소신용카드가맹점에 해당하는 연매출 30억 미만 소상공인까지 정해졌다. 도소매 등 일부 업종에 대해서는 연매출 50억 미만 사업자까지 보상 범위를 넓혔다. KT는 당초 연매출 5억원 미만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영업손실 등 2차 피해를 보상하려고 했지만, ‘상생보상협의체’와 논의를 거쳐 범위를 확대했다. 보상금 명칭은 ‘상생협력지원금’으로 정해졌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지난 11일 아현시장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주체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KT가 적극적으로 나서 소상공인들에게 구체적인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뉴시스

보상 지급 대상이 확정되면서 지난달 15일부터 피해 접수가 본격화됐다. 피해 접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병행됐다. 온라인의 경우, 지난달 15일부터 오는 8월 16일까지 KT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 가능하다. 오프라인 현장 접수는 15일이 마감이다. KT는 지역 주민센터를 통해 오프라인 접수를 받아왔다. 피해보상 신청서에는 상호명, 사업자등록번호, 업태·업종, 사업장 주소, 계좌번호 등을 기재하면 된다.
 
아쉬운 점은 소상공인들의 피해신고 접수율이 다소 미진하다는 점이다. 안 소장은 “홍보가 덜 돼 피해 신고를 받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소상공인들이 많은데다, 서류 작성이나 접수 과정을 까다롭게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생업을 중단하기 어려운 상인들의 경우, 여유 시간이 없어 주민센터를 찾기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생업 때문에 접수조차 못하는 상인 부지기수 

11일 오후 3시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런 문제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피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현장 접수에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 및 임원진, 노웅래 의원실 관계자인 이세열 서울시 의원, 이홍민 마포구 의원과 안진걸 소장, 아현시장 상인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최승재 회장은 이날 “‘상생보상협의체’에서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 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피해 접수를 받고 있지만, 막상 소상공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가거나 신청서 작성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세열 서울시의회 의원은 “현장에서 보니 아직도 피해 접수 사실을 모르는 소상공인들이 많다”며 “KT가 피해 접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소장도 “KT가 적극적으로 나서 소상공인들에게 구체적인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피해 보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전단지로 홍보하고 직접 접수도 받으며 신청 내용을 알렸다. 실제로 피해 접수와 관련한 내용을 모르거나, 생업이 바빠 접수를 못하는 상인들을 일부 만날 수 있었다. 시장에서 호떡을 팔고 있는 상인 D씨는 “시간이 없어서 피해 신고서를 접수할 틈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시장 인근에서 유황오리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E씨는 이날 “기자회견 행사를 통해 피해 접수를 받고 있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E씨 역시 통신장애 사건 당시, 전화와 카드 결제 먹통으로 상당한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다만 당시 KT의 직원들이 거리가 먼 이곳 식당까지 찾아와 회식을 자주 해주는 일이 있었다며 고마움도 표했다.

◇ "새로운 배상 관행과 문화 만드는 첫 발판"  

15일 오프라인 마감은 완료됐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확인된 접수건수는 총 9,579건이다. 대부분의 접수는 오프라인에 집중됐다. 전체 접수 건 중 온라인 접수는 전체의 28%인 2,711건에 불과했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이후에도 추가적인 현장접수를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온라인 접수를 어려워하는 상인분들이 많다”며 “이에 상인들에게 협회 측에서 현장접수를 받아 KT 측에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KT와 논의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앞에서 피해보상 신청 접수를 홍보하고 현장접수를 받았다./시사위크

앞으로 남아있는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보상금액을 협의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KT는 소상공인 추정 피해액과 업종별 실제 평균 영업이익을 감안해 상생보상협의체에서 보상규모를 결정할 예정이다.

피해 규모를 두고 KT와 소상공인 단체들은 치열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소상공인협의회 측은 “어제도 회의가 진행됐지만 좀더 협의하기로 했다”며 “진전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소장은 이번 보상 협의가 단순한 피해보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안 소장은 “통신 피해로 인한 영업손실을 배상해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통신서비스뿐만 아니라 여러 공공서비스에서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 배상을 해주는 관행과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공급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KT가 상생 보상에 나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끝까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