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결렬에 대한 상황파악을 마치고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방침이다. 비록 하노이 협상이 합의에 이르진 못했지만, 북미 양측이 생각하는 비핵화 방식에 대해 이해했고 다음 협상을 기약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아직까지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는 북한과의 물밑 접촉 등을 통해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합의안을 도출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작년에 우리가 북미 간의 대화를 견인했고 또 6.12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간의 대화를 견인했다”며 “이번에는 남북 간 대화의 차례가 아닌가 보여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넘겨진 이 바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트럼프-김정은 ‘탑다운’ 방식 유도

형식은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탑다운’ 형태가 유지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하노이 노딜’의 원인을 정상 간 탑다운 협상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모라토리엄과 북미 싱가포르 합의는 탑다운 방식이 아니었다면 성사 자체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무엇보다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남북미 정상들의 신뢰관계가 여전하다는 점이 이유가 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도 “두 최고지도자의 궁합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수차례 강조했었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단계적 비핵화’로 잡았다. 이 역시 지금까지 추진됐던 내용과 유사한 형태다. 한 두 번의 ‘스몰딜’ 과정을 거쳐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한다는 로드맵이다. 물리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 꽤 오랜 시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했다. 실제 북한을 사찰했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비핵화 과정에 최소 15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문제는 청와대의 이 같은 판단이 최근 미국 측의 기류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은 존 볼턴 보좌관 등 강경파가 전면에 나서 완전한 비핵화와 제재해제를 한 번에 맞바꾸는 ‘빅딜’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과 만나 국제사회의 완전한 대북제재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북한을 달래면서 동시에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놓인 셈이다.

◇ 각 단계별 비핵화 ‘개념일치’ 관건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다시 한 번 '탑-다운' 방식을 시도해보겠다는 방침이다. /AP-뉴시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다시 한 번 '탑-다운' 방식을 시도해보겠다는 방침이다. /AP-뉴시스

설득과정의 최대 관건은 미국의 구미가 당길만한 좋은 ‘스몰딜’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청와대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는 분명하지만, 그 과정을 지표화하고 우선순위를 합의하는 것은 사실상 비핵화 전 과정을 합의하는 것에 필적할 정도의 어려움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두고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청와대는 성공적인 중재를 위해서는 각 단계별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남북미 간 의견일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시설을 해체해야 핵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핵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것인지 등에 기준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주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단계별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 개념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점을 좁혀가고 있지만 (비핵화의 정의에) 차이가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종적인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핵화의 운영적인 정의(operation definition)에 대해서 우리가 고민을 해봐야 될 때가 됐다”며 “지난 30년 간 비핵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시도가 된 적이 없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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