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적극 추진 중인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무거운 숙제를 마주하게 됐다. /뉴시스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적극 추진 중인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무거운 숙제를 마주하게 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특히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고용의 불안을 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 주기 바랍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11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번 모두발언에서 유일하게 특정현안을 콕 짚어 강조한 부분이었다.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1월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우조선해양 매각 추진을 발표하며 큰 발걸음을 뗐다. 산업은행과 조선업계의 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과 물밑협상을 상당부분 진행해왔고, 삼성중공업이 일찌감치 인수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매각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지난 8일 본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현대중공업으로 매각될 경우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을 수 있다며 ‘매각 결사반대’에 나선 것이다. 노조 입장에서 이러한 우려는 당연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사업구조 및 주력선종이 상당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향후 효율성 제고, 경영위기 해소 등을 명분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할 경우,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동걸 회장과 현대중공업 측은 매각 이후 구조조정은 없다고 강조했지만, 노조의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매각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조의 반발은 과격양상을 띄고 있다.

매각 추진 발표 이후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지난달 산업은행 본관 건물에 계란을 투척했다. 이에 이동걸 회장은 “과격행동을 자제해달라”며 쓴소리를 했지만, 본계약 체결 이후 노조는 더욱 과격해지고 있다. 본계약 체결 당시 노조는 산업은행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충돌했고, 실제 내부에 진입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3일엔 대우조선해양 노조 조합원 일부가 거제시장실을 점거하고 집기를 파괴하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후 노조가 사과하며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갈수록 과격해지는 노조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도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이동걸 회장은 ‘강행모드’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경남도청에서 간담회를 갖고 변광용 거제시장을 만나 지역사회 및 노조의 입장이 담긴 요구서를 전달받은 이동걸 회장은 유독 노조와의 만남엔 나서지 않고 있다.

이날도 경남도청까지 내려간 만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찾아 노조와 만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경남도청에 이어 부산으로 향한 그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달 초 실사를 시작하겠다”며 구체적인 일정을 밝혔다. 노조를 더욱 자극할 수 있는 행보였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구조조정은 없다”는 말만으로는 노조를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조의 불만을 해소하고 설득하기 위해선 명문화된 합의와 일종의 ‘당근’이 필요한데, 이 경우엔 매각이 지연 또는 무산될 우려가 있다. 이동걸 회장이 노조와의 만남에 나서지 않은 채 매각을 속전속결 추진하고 있는 이유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조는 외면할 수 있어도 문재인 대통령의 구체적 주문까지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동걸 회장 입장에선 풀기 힘든 숙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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