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혀 있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입구. /AP-뉴시스
굳게 닫혀 있는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입구.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사건의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스페인 당국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홍 창이라는 미국거주 멕시코인이 주도했으며 한국인과 미국인 10여 명이 가담했다. 이들은 전투용 칼과 수갑 등을 구매한 뒤 대사관에 도착해 한 시간가량 인원들을 억류했다. 몇 시간 뒤 컴퓨터 두 대와 하드 디스크 두 개, 휴대전화 등을 챙겨 달아났으며 일부는 미국 뉴욕에 도착해 FBI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관련 자료를 미국에 넘기면서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 누가 왜 공격했나

언론에 사건이 보도된 뒤 자유조선은 배후에 자신들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유조선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구출했다고 주장하는 단체로 최근 이름을 ‘자유조선’으로 바꾼 조직이다. 스페인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주도자 에이드리언 홍 창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되진 않고 있다. AFP 통신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오랜 기간 반북 활동을 해온 인물이라고 에이드리언 홍 창을 소개했다.

이들이 대사관을 습격한 목적은 아직까지 불명확하다. 스페인 당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홍 창은 사업가로 가장해 투자의사를 밝혔으며 태연히 관내에 진입해 동조자들과 함께 직원들을 결박했다. 그리고 영사를 지하실로 데려가 탈북을 권유한 것으로 보아, 대사관 내 탈북을 희망하는 관계자와의 접촉을 위한 행동 가능성이 있다. 자유조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언론보도와 달리 우리는 초대를 받은 것이며 결박도 폭행도 없었다”며 “습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컴퓨터와 하드 디스크 등을 가져갔다는 점에서 정보탈취 목적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자유조선은 “비밀유지 합의 하에 엄청난 잠재가치가 있는 특정 정보를 FBI와 공유했다”고 밝혔는데, 스페인 당국도 에이드리언 홍 창 등 일부가 FBI와 접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미국 대외정보기관인 CIA를 두고 국내 수사를 담당하는 FBI와 접촉한 데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CIA와의 접촉 가능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용의자 중 2명 이상이 북한 대사관 습격 전 CIA 관계자와 접촉한 적이 있다”며 “스페인 정보 당국은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으나 미국 측은 이에 대해 어떠한 확답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미국 측에 넘긴 정보는?

지난 3.1절을 맞이해 자유조선(옛 천리마 민방위)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미국 FBI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정보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천리마 민방위 홈페이지 캡쳐
지난 3.1절을 맞이해 자유조선(옛 천리마 민방위)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미국 FBI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정보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천리마 민방위 홈페이지 캡쳐

에이드리언 홍 창 등이 미국 FBI에 넘긴 정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자유조선은 “엄청난 잠재가치가 있는 정보”라고 하면서 “그들이(FBI) 요구한 것이며 우리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이와 관련해 “정해진 책자의 특정 페이지에 쓰인 글을 활용하는 암호를 해독할 변신용 컴퓨터를 가져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FBI는 ‘주문한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다’며 부인했지만, 전문가들은 적어도 일부는 넘어갔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28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김정봉 전 국정원 대북실장은 “북한이 외무성에서 전문을 내려보낼 때 대사관 컴퓨터에 항일 빨치산식 암호 해독 프로그램이 있다”며 “암호 알고리즘을 알게 되면 과거의 암호도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기관에서는 해킹을 한다고 해도 북한이 보낸 암호를 해독할 수 없는데 이번 계기로 그게 전부 다 해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북한 측의 동향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도 상존한다. 특히 비핵화 실무협상을 주도한 김혁철 대미특별대사가 주스페인 대사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대사관 습격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월 22일로, 당시는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합의안 도출을 위해 치열하게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던 시기였다.

김 전 실장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외무성에서 각 대사관에 훈령을 내린 게 있을 것이다. 4월 27일 판문점 공동선언, 6월 12일 정상회담, 이번에 하노이 정상회담 관련해서 북한의 입장과 선전방향에 대한 지시 및 지령이 내려갔을 것”이라며 “미북정상회담이 27일 열렸는데 그 직전에 FBI에 (정보) 전달을 했다. 아마 북한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장관, 이런 사람들이 미리 받아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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