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5 19:02 (화)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한반도 정세 소강상태 속 인도주의 문제 서둘러야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한반도 정세 소강상태 속 인도주의 문제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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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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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올 초부터 요동치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은 양상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졌지만 물살은 더 거세지는 듯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이후 북미 간의 기싸움은 물론 남북관계에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돌았다.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조선반도 비핵화’를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인데 분위기가 녹록지 않다. 대북제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온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접근 정책 자체를 수정하라며 압박하고 있어 정부의 입지를 좁혀놓고 있다.
 
1월 신년사를 통해 지난 한 해를 회고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은 가장 적대적이던 조미 관계를 극적으로 전화시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 공조와 2차 북미정상회담 대책 등을 논의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일정에 오르면서 핵과 대북제재의 해제 등 의제를 둘러싼 물밑 조율이 한창 진행됐고,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만남에서 대타협을 점치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국 빗나가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인도적 문제의 해결을 간절하게 바라는 분위기가 실향민 사회와 납북억류자 가족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핵심이다. 남북한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같은 해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가졌다. 이산가족의 금강산 만남은 2015년 10월 20차 상봉행사 이후 2년 10개월만의 일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산상봉은 간헐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순탄치 않았다.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대화 쪽으로 돌리는 계기로 시혜성 상봉카드를 활용한데다, 행사가 열리는 현장 분위기도 남북관계의 긴장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크고 작은 마찰과 남북 간 힘겨루기가 펼쳐졌고 남측 행사 관계자나 이산가족들은 행여 불상사가 생기거나 행사가 중단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돼 실행에 옮겨진 이산 상봉은 남북관계의 향배를 가를 중요한 계기로 점쳐졌다. 두 정상 간의 합의 가운데 우리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가장 높은 현안이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란 측면에서였다. 과거의 경우를 볼 때 대북정책 지지 여부에 이산상봉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8월 상봉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사실 청와대와 정부는 상봉 성사의 여세를 몰아 이산가족 상봉의 규모 확대와 정례화 등을 추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인도적 문제의 해결과 함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복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상봉 행사가 시작된 8월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기적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화상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방문 등 상봉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면서 붕괴되다시피 한 북한의 의료체계도 문제다. 김정은 체제 들어 평양에 일부 특권층을 위한 새 의료시설이 세워졌지만 일반주민들이 이용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란 얘기다. 또 지방의 경우엔 이런 혜택과 거리가 멀다. 경제난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의료보건체계의 마비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실제로 수술환자들에게 투입할 마취제나 주요 약품이 없어 고통이 심화되고 수술 후 환자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국제기구의 보고가 나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이런 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개선책을 마련하거나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체제유지나 선전을 위한 겉치레식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체계는 우리에게도 불똥을 튀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570여명에 달한다. 이는 2017년에 비해 1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우리 보건당국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 ‘북한 요인’으로 꼽는다. 환자가 파주와 고양·김포·양주 등 경기도 서북부의 북한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머리를 맞댄 남북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보건·의료분야 협력에 의기투합했지만 실제 이행까지는 갈 길어 멀어 보인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단순한 약품 지원이 아닌 직접 접촉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 긴요한데 우리 의료 인력이나 관련자들의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문제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분야로 꼽힌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한 해 대남, 대미 화해 제스처와 유화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극적인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이런 변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잔혹한 지도자’로 기억하게 만드는 잔상은 여전하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은 그 중 하나다. 김정은에게는 ‘권력을 위해서는 친인척도 죽이는 걸 서슴지 않는 잔혹한 지도자’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젊은 지도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면서 개혁·개방 가능성에 외부세계의 시선이 쏠려있던 상황에서 벌어진 잔혹한 숙청은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감을 일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린 후계자 김정은을 위해 후견인 역할을 맡긴 인물인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북한 권력 안팎에서의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또 2017년 2월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의 경우, 이복형을 은밀한 테러형태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은 북한의 인권유린 문제에 대해서도 규탄과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대답과 변화의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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