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3 18:48 (화)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염치없는 세상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염치없는 세상
  • 시사위크
  • 승인 2019.04.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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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장자》<추수편>에는 정치권력에 대한 장자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두 우화가 나오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살았던 장자에게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다 헛된 것이었지.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임을 알고 권력과 부를 멀리 했다고나 할까.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을 때, 초나라의 왕이 보낸 두 대부가 찾아와 나랏일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네. 그때 장자는 낚싯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하지. “내가 듣기로는 초나라에 죽은 지 삼천 년이나 된 신령한 거북이 비단으로 싸여 사당 위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 거북들은 죽어서 뼈만 남아 귀한 대접을 받길 원했을까? 아니면 살아서 편히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었을까?” 두 대부는 얼른 “물론 살아서 편히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었겠지요”라고 대답한다. “돌아가시오. 나도 살아서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권력을 하찮게 여긴 장자의 통쾌한 대답일세.

원추라는 새 이야기도 비슷하지. 장자에 따르면, 원추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감로수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고상한 것만 추구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새이다. 그런 원추가 남해를 떠나 북해로 날아가는데 마침 아래서 썩을 쥐를 얻어 물고 있던 솔개가 원추를 보고 ‘썩 꺼져!’라고 외친다. 썩은 쥐를 물고 있는 솔개가 대나무 열매만 먹는 원추에게 그 썩은 쥐를 뺏길까 봐 꽥 소리를 지르다니… 난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혼자 웃지.  이 원추 이야기는 원래 혜자가 양나라 재상 자리를 친구인 장자 자신에게 뺏길까 두려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혜자를 직접 찾아가 들려준 거네. 오동나무, 대나무, 감로수로 상징되는 자연 속에서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거북처럼 자유롭게 사는 자네 친구 장자는 ‘썩은 쥐’ 같은 정치권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혜자에게 말하고 있는 거지.  

지난 며칠 동안 장관 후보자들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장자의 저 두 우화를 생각했네. 온 나라가 미세먼지와 함께 ‘썩은 쥐’냄새로 가득 찬 것 같아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지. 이른바 세속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왜 모두 저렇게 하나같이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염치를 잃어버렸는지.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속물들을 모아 놓은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것 같아서 멀미가 나올 지경이었네. 그 중 제일 역겨운 작품은 단연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였고.‘주택은 투자나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공간’임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지난 20여 년 동안 부동산 투기로만 20억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챙긴 투기꾼을 지명한 청와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만 커진 청문회였어.

장관,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의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네만, 어쩌면 우리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가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성장에 취해 염치를 잃어버린 것 같네.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이 뭔지 알았던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불가능한 게 없다고 믿는 정신적 천민들이 되어버린 거야. 돈과 물질적인 것만을 숭상하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것, 자연과 더불어 착하고 아름답게 사는 것의 즐거움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속물이 되어버린 거지. 마치 속물이라는 영어 snobbery가 처음 등장한 19세기의 초의 영국 부르주아지들처럼. 
  
서울에서 술을 마셔 크게 취해서/ 해질 무렵 미친 듯이 노래 부르며 돌아오네./ 봉래산에는 속물들이 너무 많기에/ 유희하며 인간 세상에 머물고 있지.

이 시 <제목을 잃어버린 시>의 지은이는 김가기라는 조선 후기 사람인데, 언제 태어나서 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한 기인일세. 봉래산이 어디인가? 신선들이 살고 불사의 영약이 있다는 전설 속의 동네이네. 거기에도 속물들이 많다니 어디를 가든 피하기 어렵다는 거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인 19세기 영국을 흔히 속물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지금 여기’ 대한민국도 200년 전 영국 못지않은 속물들 세상이 되어버렸네. 돈을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후안무치한 자들로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아수라가 된 거야. 그러니 속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혼자 고고하게 살려면 술과 친해질 수밖에. 그래서 술이나 약물에 취하지 않고도 장자처럼 인위적인 것들보다는 자연과 함께 하는, 돈과 권력을 우습게보거나 무시하는, 기개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 보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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