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과 ‘밀정’에서 각각 배우 조승우, 이병헌 씨가 연기한 김원봉 선생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고도 해방 이후의 행적이 문제가 돼 서훈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영화 스틸컷
영화 ‘암살’과 ‘밀정’에서 배우 조승우, 이병헌 씨가 연기한 김원봉 선생은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해방 이후의 행적이 문제가 돼 서훈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영화 스틸컷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국가보훈처가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추진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센 만큼 의견 수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김원봉 선생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로 몰렸고, 그의 서훈은 “김일성도 훈장을 줘야 한다”는 논리에 부딪혔다. 결국 월북이 문제였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공적이 원전에서 확인되고, 사망 시까지 행적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포상 대상자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훈처의 기준대로라면 김원봉 선생은 서훈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원봉 선생의 서훈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다시 말해 김원봉 선생이 북한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봉 선생은 암살의 위협을 느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도 “김원봉은 북한으로 가지 않았으면 여운형 또는 김구 다음에 암살당했을 것이 뻔했다”고 설명했다. 독립투사들이 좌익이나 빨갱이로 몰려 암살당하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해방 후 친일 경찰에게 붙잡혀 모욕을 당했던 게 상처가 됐다. 역사학자 전우용 씨는 “친일 고문 경찰로 악명이 높았던 노덕술에게 따귀를 맞고 돌아온 김원봉은 꼬박 사흘을 울었다”면서 “친일파들이 활개 치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료에 따르면, 김원봉 선생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했다. 조선의용대장, 광복군사령관을 거쳐 임시정부 군무부장과 국무위원을 지냈다. 일제가 가장 잡고 싶어 했던 독립투사가 바로 그다. 당시 김원봉 선생의 현상금은 무려 100만원이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약 300억원에 이른다. 백범 김구 선생의 현상금이 60만원이었다는 점에서 김원봉 선생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몽양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한 이듬해인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석차 북한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까지 올랐다. 행방이 묘연해진 것은 1958년 전권을 실각한 뒤다. 이를 두고 역사학자들은 김원봉 선생이 김일성 주석에 의해 숙청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김삼웅 전 관장은 지난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김원봉은 우리 독립운동군의 총사령관적 위치에 있었다. 김일성도 독립운동을 했지만 연대장이나 대대장급 수준으로 비교될 수는 없다”며 “북한 정권이 6·25 이후 남로당, 연안파, 김원봉을 차례대로 숙청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의 애국열사능에도 김원봉 선생의 묘비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삼웅 전 관장은 “김원봉의 공로는 배척하고 해방 후 북한에서 요직을 맡았다는 단세포적 사건만 가지고 평가하면 그분의 헌신은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이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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