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4 14:45 (수)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노인복지와 경제성장
[김재필 '에세이'] H에게- 노인복지와 경제성장
  • 시사위크
  • 승인 2019.04.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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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정부가 현행 65세인 노인 복지제도의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같네. 보건복지부는 4월 10일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년)’을 발표하면서 노인의료비 감면제도인 ‘노인외래정액제’의 적용 나이를 현재 만 65세에서 단계적으로 만 70세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네. 이 제도는 만 65세 이상 환자가 의원급 동네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거나 약국에서 조제를 받을 때, 총 진료비(건강보험 적용기준)가 1만5,000원 이하면 1,500원, 1만5,000 초과 ~ 2만원 이하면 10%, 2만원 초과 ~ 2만 5,000원 이하면 20%, 2만 5,000원 초과하면 30%을 본인이 부담하게 함으로써 노인들의 의료비를 감면해주네. 지난해 노인들에게 4,696억 원의 혜택이 돌아간 복지제도이지만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니 고쳐야 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네. 복지부 계획대로 노인외래정액제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올리면 약 240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하는구먼.

박능후 복지부장관이 지난 1월 24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전체 워크숍'에 참석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연령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 "노인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할 경우, 2040년 생산가능인구는 424만명 늘고, 고령인구 비율은 8.4%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네. 노인 숫자를 줄여 더 오래 일하게 만들겠다는 거지. 그러면서  "현재의 노동생산성과 경제활동참가율을 반영하면 36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0% 내외지만, 은퇴시기를 5년 연장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OECD 수준으로 향상시키면서 출산율을 증가시키면 향후 10년 이내에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 후반, 20년 내에는 1%를 유지한다”는 한 연구결과를 언급하기도 했네.    

허울뿐인 이름이지만 명색이 진보 정부의 복지부장관이 저런 이유로 노인 연령 상향 조정에 앞장서야 하는지 점점 이 정권의 정체성에 의문이 많아지고 있네. 시민들의 보건과 복지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부서를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제반 복지를 적어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려고 노력해야지, 경제성장률 타령을 하고 있으니 복지부장관인지 경제부총리인지 헷갈리는구먼. 그도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걸세.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친 교수였으니 대한민국의 복지수준이 OECD 국가들 중 멕시코와 더불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꼴찌를 다투고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예를 들면, 한국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나이인 실질은퇴연령이 남성 72.9세, 여성 70.6세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걸세. OECD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국가들의 평균 실질은퇴연령(2009~2014년)은 남성 64.6세, 여성 63.1세였네. 은퇴 후 죽을 때까지 쉬는 기간은 남자 11.4년, 여자 16.6년으로 OECD 평균 17.6년, 22.3년보다 훨씬 짧았네. 프랑스에 사는 노인들은 은퇴 후에 남녀 모두 23년 이상 쉬다가 가는 것으로 나타났네. 70년 이상 일과 공부만 하다가 10여년 정도, 그마저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쉬었다 가는 게 보통 한국 사람들의 한 평생이라니… 슬프고 씁쓸하지 않는가?  이러니 외국 언론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중독자’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니까.  

세계적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신간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이른바 ‘경제성장’은 지금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끔찍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보편적 해결책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을 지속시키고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면서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노인들에게 주어진 쥐꼬리만 한 복지마저 줄이려고 획책하는 정치인과 지식인, 아직 젊은데 ‘노인’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아무런 생각 없이, 아니면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애국심만으로, 노인 연령 상향에 찬성하는 분들에게 바우만의 다음 구절을 들려주고 싶네.

“현재 추세대로라면, 경제성장(국민총생산이라는 통계 수치로 표현되며 화폐 유통량의 증가와 동일시되는)은 우리 대부분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성장은 이미 압도적 다수인데도 여전히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도 더 심각하고 냉혹한 불평등과 더 불안정한 조건 및 더 많은 추락과 원통함과 모욕과 굴욕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즉 사회적 생존을 위한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싸움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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