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세종보를 찾은 황교안 대표와 정진석 의원. /뉴시스
18일 세종보를 찾은 황교안 대표와 정진석 의원.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결정은 전격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대표는 “당 일각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발언이 나왔다”며 “당 윤리위 차원의 조치를 하라”고 지시했다. 차명진 전 의원의 막말이 논란이 된 이후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첫 회의에서의 결정이었다.

회부 대상에는 차명진 전 의원과 함께 정진석 의원이 올랐다. 차 전 의원과 달리 정진석 의원은 친구가 보낸 글을 전재한 것이어서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눈 감고 감싸주려고 했다면, 윤리위 회부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황 대표의 결정은 단호했다. 정 의원이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억울하다는 뉘앙스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용없었다.

정무적 관점에서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정 의원은 무려 4선 국회의원이며, 청와대 정무수석과 집권여당 원내대표까지 올랐던 거물이다. 차기 충청맹주를 꼽으라면 후보군에 빠지지 않는 인사이기도 하다. 황 대표가 총리를 역임했고 당권을 쥐고 있다지만, 정치경력이나 내공으로만 따지면 상대하기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다. 황 대표는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윤리위 회부 방침을 밝혔는데, 이를 본 중진의원들은 매우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다.

◇ “황교안은 대주주일지도 모른다”

결과는 예상외로 싱거웠다. 정 의원은 논란이 됐던 글을 삭제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 없었다”며 사과했다. 당 지도부 방침에 따라 윤리위에 출석해 “소상하게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황 대표와 대립하는 대신 몸을 바짝 낮추는 선택을 한 셈이다. 5.18망언으로 윤리위에 회부됐던 김진태 의원이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에 반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는 확연했다. 물론 정 의원이 인용했던 내용이 적절치 않았기 때문에 싸움의 명분이 약했던 이유도 있다.

황 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일부 의원들이 정 의원을 감쌌지만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산발적이었다. ‘억울할 수 있지만 어쩌겠느냐’며 쉬쉬했다. 당 안팎에서 “황교안은 CEO가 아니라 대주주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완승이었다. ‘막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앞으로 있을 공천과정에서의 잡음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진석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의 윤리위 회부를 공개비판한 홍준표 전 대표. /뉴시스
정진석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의 윤리위 회부를 공개비판한 홍준표 전 대표. /뉴시스

이에 제동을 건 인물은 홍준표 전 대표다. 홍준표 전 대표는 “두 사람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 윤리위 회부감이라면 제가 한 위장평화 발언도 회부대상”이라며 “잘못된 시류에 핍박을 받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지도자”라고 충고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 전 대표가 황 대표를 견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힘겨루기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청와대와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여당과 다르게, 야당의 공천과정은 확고한 리더십이 없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미래권력이나 유력 정치인 중심으로 이합집산과 줄 세우기가 유독 야권에서 심해지는 이유다.

특히 당내투쟁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다른 무엇보다 치열하게 전개된다. 오로지 힘과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냉혹한 싸움이다. 차라리 선거법이라는 룰 내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선거는 신사적이라고 할 정도다. 그럼에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인물이라면 피해서는 안 되는 전쟁일 수밖에 없다. 황 대표와 홍 전 대표의 ‘흑막’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