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특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 및 당직자들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추진을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 뉴시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특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 및 당직자들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추진을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추진하려는 여야4당과 이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일부 바른미래당이 정면충돌하면서 정국이 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 사흘째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의원실을 점거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의 ‘여성의원 신체접촉’ 논란이 불거지는 등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다.

25일 국회는 오전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이날은 여야4당 원내대표가 선거제 개혁안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정치개혁·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합의한 시한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공수처법에 반대하는 오신환 의원을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임하고 채이배 의원을 보임했다. 전날(24일) 한국당의 국회의장실 점거농성 사태로 충격을 받아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은 병상에서 사보임 요청서를 결재했다.

공수처법에 반대하는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문 의장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 사보임 건 결재를 끝까지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채이배 의원이 합류하면서 사개특위는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는 구성(재적위원 5분의 3이상의 찬성)을 갖추게 됐다.

그러자 한국당은 소속 국회의원은 물론 당직자와 보좌진을 총동원해 국회 내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사개특위 회의 자체를 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채이배 의원의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채이배 의원실 입구를 의자로 막기도 했다. 채 의원은 경찰과 소방에 직접 감금 신고를 하고 사무실 창문을 깨서라도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 채 의원은 의원실을 탈출해 민주당과의 공수처법 세부 논의에 참석했다. ‘감금’ 6시간 만이었다.

◇ 대화·타협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 살려야

한국당이 “여야4당의 날치기 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패스트트랙은 역설적이게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입법을 주도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에 명시된 조항이다. 양당체제의 국회에서 여야의 대립으로 쟁점 법안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생기자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서명 또는 해당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특정 정당이 정치적 목적으로 상대 정당의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없도록 한 ‘안전장치’다.

국회선진화법이 날치기·몸싸움을 막기 위한 입법이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여야4당의 패스트트랙 합의 이후 여야는 몸싸움·감금·막말·점거농성을 반복했다. 한국당이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것 역시 국회법에 어긋난다. 국회법은 ‘위원회 회의장 위원장석을 점거해선 안 된다’ ‘누구든지 의원이 위원회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권미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회의실은 물론 심지어 사보임 대상 의원실까지 이례적으로 점거하는 것은 명백히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국회를 다시 몸싸움과 폭력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행위임을 한국당은 직시해야 한다”며 “국회 존립과 품위 차원에서 이번 한국당의 점거 사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아직 회의 일시가 정해지지 않았고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법안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라는 점을 이용해 점거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채 의원 감금사태에 대해서도 회의 일시·장소가 고지된 적이 없으니 회의 참석을 방해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회의장 공지가 나오지 않았고 우리가 출입을 통제한 건 아니다”며 “불법적인 사·보임에 대한 반대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 절차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고 ‘선거의 룰’을 만드는 선거법 개정 논의에 제1야당인 한국당이 합류하지 않았다는 점은 나머지 정당으로서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여야4당은 패스트트랙 마지노선까지 한국당 설득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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