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 교수는 “20세기 문명은 도시의 승리”라며 도시를 인간 최대의 발명품이라고 봤다. 실제 도시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이뤄지도록 공간을 제공했고, 기술발전에 따라 조금씩 발전해왔다. 무엇보다 ‘사람’이 모이면서 창의력을 배가시킬 수 있었다. 제프리 웨스트는 사이언스 기고문을 통해 도시의 인구가 10배가 늘어나면 창조적 역량은 17~31배 늘어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지속 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대기오염과 자연파괴, 과도한 에너지 사용, 비효율적 공간사용 등의 문제가 커지고 있다. 특히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도시의 환경을 개선함은 물론이고, 향후 20~30년 동안 변화될 삶의 양식에 따라 새로운 생활터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 모든 현상의 데이터화가 스마트시티의 출발
2회 ‘코리아단번도약포럼’ 발제를 맡은 정재승 세종 스마트 시티 시범도시 총괄은 “70kg의 성인 한 명을 움직이는데 1톤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만약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고, 또 소유가 아니라 잠깐의 서비스로 이동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때의 도로는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며 “지난 100년의 도시개발 모델이 아니라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방향으로 제시된 것이 ‘스마트시티’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2월 부산시와 세종시를 스마트 시티 시범도시로 지정하고 정부 1조4,000억원, 민간투자 8,000억원을 합쳐 2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마트시티는 4차 산업혁명의 요람”이라며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미래 도시의 모습이며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꾸려줄 터전”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정의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이 디지털 데이터 형식으로 클라우드 시스템에 저장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아진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도시 서비스의 총아가 정부가 이야기하는 스마트시티의 개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 네비게이션은 아주 초기 단계의 스마트시티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도로정보에 자동차 흐름을 겹치니 목적지까지 소요시간, 빠른 길 등 맞춤형 예측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두 세계(현실과 데이터)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해보자. 보행자 정보, 차선과 차선별 자동차 정보, 교통신호, 노면 상태, 교통사고 이런 정보들이 온라인으로 들어가게 되면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컴퓨터가 운전하는 게 더 안전하다. 그것이 자율주행차”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전 경제학에서는 생산을 위해 토지, 자본, 노동의 3요소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두 세계가 완전히 일치하면 다른 형태의 생산이 가능해지고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해진다”며 “스마트시티는 도시의 측면에서 시민이 원하는 삶의 질과 행복을 위해 기술을 사용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 왜 북한인가
스마트시티는 우리나라가 처음 이름을 짓고 법제화를 했을 정도로 미지의 영역이다. 기존의 도시개발 모델과 완전히 달라 세종시의 규제를 완화하는데 1년이 소요될 정도로 벅찬 것도 사실이다. 서울과 평양을 스마트시티로 연결하자는 제안이 다소 공허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도시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면 교류를 통한 다양한 경협을 할 수 있고, 상호과정 속에서 우리의 도약을 견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적지 않다. 궁극적으로 스마트시티를 미래 대한민국의 수출상품이 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다.
정 교수는 “첨단산업은 단번도약 프로세스가 가능할 수 있다. 북한은 규제가 적고, 새로운 시행이 가능하며, 중앙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고,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이 깊으며 도시 단위에 적용하는데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며 “스마트시티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는 도시기술이라면 북한도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그 노력이 전 세계에 스마트시티를 수출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북한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스마트시티는 기본적으로 참여·공유·개방의 철학을 담고 있어 북한의 체제와 결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또한 관료 및 주민의 디지털 수용성 역시 문제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북한이 강력한 주민통제를 실시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개혁개방에 의지가 있는 지금의 북한이라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토론회에 참석한 민경태 여시재 한반도팀장은 “기술을 이용한 감시와 통제는 북한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고 전 세계적인 이슈다. 첨단 기술이 발달할수록 권력이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며 “단순히 기술이 들어갔다고 북한이 붕괴하고 흡수통일을 한다는 부적절한 생각을 버리고 미래지향적 생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2회 코리아단번도약포럼’은 24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개최됐다. 주최 측 외에 전유택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총장, 이병재 국토연구원 센터장,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명훈 정림건축 부사장,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변호사 등 각계 인사 180여 명이 참석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주최자 중 한 명인 조정훈 아주통일연구소장은 “남북교류를 지원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남북교류의 흐름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담론이 단번도약”이라며 “외교환경이 해결됐다는 가정하에서 남북이 모여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