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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북한은 지금 춘궁기… 대북제재 속 ‘자력갱생’ 강조 뿐
[이영종 ‘평양에선 지금’] 북한은 지금 춘궁기… 대북제재 속 ‘자력갱생’ 강조 뿐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9.04.3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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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올 봄 북한의 보릿고개가 심각하다. 전례 없는 식량부족 사태가 닥쳤다는 국제기구의 경고가 잇달아 나오지만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대북제재가 촘촘해지면서 주민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민생 챙기기’에 대한 북한 당국의 무관심과 싸늘한 대북여론이 더해져 식량난은 해법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급기야 노동신문이 식량 문제를 공개 거론하면서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신문은 지난 29일자 ‘정론’ 코너에 장문의 글을 싣고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금보다 쌀이 더 귀하다”라고 한 김일성 주석(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의 말을 소개했다. 노동신문은 “우리 국가제일주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나가기 위해서도, 사회주의 우리 집을 더욱 억세게 떠받들기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쌀이 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식량 부족 사태는 국제기구의 통계로도 확인된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3월 북한을 올해 외부 지원이 필요한 식량부족국가로 다시 지정했다. 이 기구는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2019년도 1분기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식량 부족국가 41개 나라에 포함시켰다. 지난해 여름 북한의 곡창지대에 가뭄이 이어졌고, 기온도 높지 않아 쌀농사 작황이 나빴다는 것이다. 북한의 올해 식량부족 물량은 모두 64만1,000톤으로 지난해 46만톤보다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이 같은 속사정을 공개하거나 인정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다만 내부적으로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정황이 드러난다.

최근 공개된 북한 내부 문건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인도네시아 주재 대사 안광일의 직함과 이름이 명기된 외교 문건을 통해 식량 부족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고, “현 식량 상황의 위험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기성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문건에서 북한은 지난해 식량 수확이 495만1,000톤이라면서 그 이전보다 50만3,000톤 줄어들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 올해 부족량을 148만여톤으로 밝히고 있어 국제기구의 추계치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함을 보여줬다. 아울러 외교관들이 식량 조달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시기와 관련 “4월 중에 실현해야 함”이라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대북제재의 파고가 거칠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7년 11월 말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잇달아 쏘아올리고 핵 실험을 감행한데 따른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 응징조치가 문턱을 낮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과거 유엔의 대북제재의 예외조항이던 인도적 식량 지원 등을 악용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던 것도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더욱이 김정은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미온적 입장을 취하면서 대북여론은 싸늘해졌다. 회담 판이 깨진 뒤 북한의 이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당시 직책)이 ‘인민생활’과 관련된 제재는 예외로 해달라고 미국에 요구했으나 관철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볼멘소리를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거 북한의 잘못을 알고 있는 국제여론이 꿈쩍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국제기구의 대북지원은 목표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고 한다. 최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각국 정부와 단체 등이 대북 인도지원을 위해 기여를 약속한 돈은 모두 574만달러(우리 돈 약 65억원) 수준이다. 스위스가 절반인 282만달러(49.1%)로 나타났고, 스웨덴과 독일·아일랜드 순이었다. 이 가운데 식량지원에 쓰이는 돈은 약 32%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의 사업에 필요한 돈의 2.2%에 불과하다는 게 OCHA 측의 설명이다.

사실 김정은 집권 이후 한동안 북한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발표가 나오고, 식량 사정도 좋아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각에선 이를 근거로 대북제재 무용론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만성적인 경제난에 식량난까지 겹치는 상황이 초래되면서 국면이 달라졌다. 우리 정부와 대북NGO 등은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했지만 대북제재 국면에서 현실적인 벽에 부닥친 상황이다. 최근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 과정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밀 5만톤을 지원했지만 이마저도 북한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10만톤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은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990년대 말 북한을 휩쓴 대기근 사태인 ‘고난의 행군’에 버금가는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나온다고 한다. 실정이 이런데도 북한은 대북식량 지원 확보를 위한 과감한 조치나 결단을 거부하면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 만을 강요하고 있다. 관영 선전매체들은 연일 제재에 맞선 '자력갱생 총력전'을 강조하면서 대북제재에 맞서 투쟁하자는 취지의 선동을 강화한 상태다.

북한이 당면한 식량부족 사태의 키를 거머쥔 김정은 위원장도 비핵화 결단을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그는 최고인민회의(4월 12~13일) 이틀 전 소집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긴장된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새 전략노선을 관철하라”고 강조했다. 또 이튿날에는 당 중앙위원회 7기 4차 전원회의를 열어 “자력갱생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나라의 자립적 경제토대를 강화하며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첨단문명과 기술이 넘쳐나고 풍요로움이 일상이 된 지구촌 동북아 지역에서 굶주림에 고통 받는 다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북제제를 풀고 북한 경제가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김정은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핵화의 결단만이 북한 체제와 주민들의 삶을 보장할 수 있다. 집권 첫 해인 2012년 4월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게 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던 김정은의 약속은 하루빨리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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