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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이 간다
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안진걸이 간다㉑] 40여년 만에 쫓겨날 위기… 을지로 노맥 원조집의 눈물
2019. 05. 03 by 이미정 기자 wkfkal2@sisaweek.com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을지로 노가리 호프골목의 원조집이 39년만에 가게 자리에서 퇴출된 위기에 놓였다. 아버지에 이어 2대 사장에 오른 강호신(사진) 씨는 가게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생맥주 마니아라면 한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서울의 명소가 있다. 을지로3가역 3번 출구 뒤편에 자리 잡은 이른바 ‘노가리 호프집 골목’이다. 오래된 인쇄소 등이 즐비한 이 골목엔 노가리를 안주로 곁들인 생맥주를 파는 호프집이 줄지어 서있다. 이 골목의 진가는 밤에 나타난다. 저녁 7시만 되면 각 가게 앞 도로에는 수백 개의 간이테이블이 깔리고 손님들이 한데 모여 맥주를 마시는 풍경은 마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골목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80년 인쇄골목이던 이곳에 작은 호프집이 문을 연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 호프집은 연탄에 구워 내는 노가리 안주를 최초로 개발해 생맥주와 함께 내놨다. 지금은 흔한 메뉴가 된 이른바 ‘노맥(노가리+맥주) 문화의 시초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은 이곳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이후 이 원조집 주변으로 하나둘씩 호프집이 들어서면서 지금의 골목이 형성됐다. 서울시는 2015년 이 골목의 가치를 인정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 “하루 아침에 나가라니”… 거리로 내몰린 을지OB베어

강호신 씨는 "아버지가 돈 욕심을 부리셨다면 노가리 골목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정 기자

그런데 최근 해당 ‘노가리 호프 골목’의 원조집인 ‘을지OB베어’가 39년 만에 가게 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경 기자는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이 호프집을 찾아갔다.

“너무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하는데, 딱 그랬다.”

을지OB베어 2대 주인인 강호신(59) 씨는 지난해 8월 30일 건물주로부터 재계약거절 통보를 받았을 때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일이 벌어지자 처음엔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놀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9월 4일 명도소송 우편물이 날아왔다. 계약 종료일(10월30일) 두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호신 씨는 “아버지가 어떻게 일군 가게인데, 하루아침에 나가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을지OB베어는 그의 아버지인 강효근 씨가 1980년 12월 문을 연 곳이다. 당시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생맥주 체인점을 모집하자 신청해 낸 가게로, OB베어의 서울 프랜차이즈 2호점이었다. 

영업 개시 후, 4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을지OB베어는 오픈 당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빨간 벽돌의 외관, 세월의 흔적이 담긴 간판, 손때 묻은 기다란 나무 테이블은 39년 전 그대로였다. 생맥주 맛과 연탄불에 구워주는 노가리 안주, 매콤한 고추장 양념도 마찬가지다. 딸인 강호신 씨가 가게를 2대째 이어받으면서,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강씨는 이 가게를 아버지의 피와 땀, 장사철학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강씨는 “아버지는 2년 5개월 동안 가게에서 스티로폼 만을 깔고 주무시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그리고 매일 새벽 일어나 골목을 빗자루로 쓸었다고 한다. 여기서 장사를 하기 위해선 그 골목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생맥주가 생소했던 시기였다. 낡은 인쇄소 골목에 들어선 생맥주 호프집은 더 낯설었을 터다. 그의 아버지는 골목에 스며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정성을 보이는 것부터 시작한 셈이다. 

◇ "아버지 욕심 부렸다면, 노가리골목 탄생 없었을 수도“

이후 을지OB베어는 노가리 안주를 개발하면서 주변 골목 사람들은 물론, 인근 직장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당시 연탄불에 노가리를 구워주는 안주로 주는 호프집은 없었다. 야간 근무를 한 인쇄골목 노동자들과 지하철 직원들은 하루의 피로를 달래러 이곳을 찾아왔다. 강씨는 초창기 일화를 설명하던 중 “아버지가 돈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의 노가리 골목은 없었을 것”이라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을지OB베어는 주변 업소와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밤 10시만 되면 가게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 이 시간은 술집이 한창 불야성을 이룰 때다. 강씨는 “아버지는 음주문화를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며 “한두 시간이라도 손님을 집에 빨리 보내면,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지 않겠느냐’가 아버지의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6월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맥주 축제가 벌어졌을 때 모습./뉴시스

그러는 사이, 을지OB베어 주변에 하나둘씩 호프집들이 들어섰다. 이른 마감으로 일부 손님들이 다른 집으로 넘어갔지만 창업주는 철학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딸인 강씨가 몇 해 전부터 가게 운영을 맡으면서 지금은 영업시간이 밤 11시까지로 변경됐다. 강씨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이 바꿨다”며 아버지를 몇 년간 설득한 끝에 시간을 바꿀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격 철학도 분명했다. 그의 아버지는 주머니 가벼운 서민 손님들을 고려해 가격 인상에 엄격했다. 현재 이 집의 생맥주 500cc 한 잔 가격은 3,500원. 노가리 한 마리 값은 1,000원이다. 다른 지역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낮은 가격이다. 강씨는 “지금 원가로는 노가리는 팔수록 손해”라며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노가리 가격을 올리면 안 된다고 한다. 생맥주 값 500원 인상도 몇 년을 졸라서, 겨우 허락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에 다른 주변 호프집도 가격 인상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호신 씨의 남편인 최수영 씨는 아내와 함께 가게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가게를 찾자 최씨는 생맥주와 노가리 안주부터 내줬다./이미정 기자​
​강호신 씨의 남편인 최수영 씨는 아내와 함께 가게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가게를 찾자 최씨는 생맥주와 노가리 안주부터 내줬다./이미정 기자​

강씨의 남편인 최수영 씨는 “호프집 상가번영회에서도 노가리 가격에 대해선 우리 쪽에 의견을 물어본다”며 “다른 상인들은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눌러놓은 가격이 1,000원”이라고 말했다. 노가리 골목이 가성비 좋은 ‘호프집 골목’으로 통하게 된 데에 창업주의 장사철학이 스며들었다는 게 그들 부부의 생각이다. 

◇ “백년가게 선정되자 마자 날벼락”

그런데 지난해 8월 말 이곳에서 하루아침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게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로부터 ‘백년가게’로 지정된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받은 통보였다. 

백년가게 육성사업은 업력 30년 이상 된 소상인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존손, 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성공모델을 확산하고자 중기부가 지난해 발표한 사업이다. 중기부는 ‘백년가게’ 소상공인에게 홍보·마케팅과 금융 혜택을 지원키로 했다. 자체 개발한 고추장 특제 양념과 사업 노하우로 39년째 한 자리를 지킨 을지OB베어는 지난해 백년가게 인증을 신청해 선정됐다. 가게 벽 한편에는 ‘백년가게 인증서’가 붙어있었다. 

강호신 씨가 손님들의 내줄 소세지 안주를 연탄불에 굽고 있다./이미정 기자 
강호신 씨가 손님들의 내줄 소세지 안주를 연탄불에 굽고 있다./이미정 기자 

부푼 마음은 한 순간에 꺼져버렸다. 건물주는 “다른 계약자와 계약했으니 재계약은 어렵다”고 통보했다. 강씨는 “월세 한번 밀린 적 없이 성실하게 영업해왔는데 너무 억울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씨는 현 임대료의 두 배 인상을 제시하며 매달렸지만 건물주의 입장은 확고했다. 

곧바로 제기된 명도소송장이 그것을 증명했다. 결국 강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 소송 절차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의 보호가 이전보다 강화됐다고 하지만 강씨 가게를 보호해줄 수는 없었다. 현행법상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이미 최초 시점에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지 수십 년이 지난 임차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설치 근거가 마련된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임대인에서 소송을 제기한 탓에 분쟁조정 절차로 밟지 못하는 처지다. 명도소송은 임대인이 유리한 경우가 일반적이라, 소송 전망도 밝지 못하다.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진걸 소장은 “임대인이 원하는 선까지 임대료를 주겠다는 데도 거절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최소한의 대화도 없이 소송을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임대인의 재산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신의 성실의 책임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갈 길 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필요해"

강씨는 이 가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다른 곳에 가서 장사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강씨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느새 눈가가 붉어진 강씨는 “만약 내가 일군 가게라면 이런 마음까지는 안 들었을 것 같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흔이 넘은 강씨의 아버지는 임대차 분쟁에 대해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안 소장은 “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맛, 추억이 있다”며 “다른 곳으로 가게 자리를 옮기게 되면 맥주와 안주 맛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의 정취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주인장의 심경을 대신 전했다. 

이날 가게를 찾은 한 여성 단골 손님은
이날 가게를 찾은 한 여성 단골 손님은 "여기는 추억이 있는 공간"이라며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보였다./이미정 기자

분쟁을 지켜보는 오랜 단골손님의 마음도 애타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인터뷰 중 한 중년의 남성은 가게에 들어와 “끝까지 버티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여성 단골손님 A씨는 “가게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만약 퇴출반대 서명이라고 받는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손님 B씨도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지인과 함께 가게를 찾은 B씨는 “이 공간은 오랜 추억이 서린 공간”이라며 “앉으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공간이지만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 분쟁이 잘 해소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본은 임차인을 기본 30년간 보호하는 강력한 차지차가법과 정기차지차가법을 운영하고 있다. 수십년간 장수가게가 유지되는 배경 중 하나다. 안 소장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법조항이 필요하다”며 “중기부 역시, 단순히 백년가게를 지정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시민단체 및 상인 단체들과 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번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이하 맘상모)도 함께 대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 쌔미 맘상모 활동가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현행법상 오래된 가게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라며 “법이 이런 현실도 반영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