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6 19:54 (월)
[박영재의 ‘향상일로’] ‘조현(調絃)’에 관한 단상(斷想)
[박영재의 ‘향상일로’] ‘조현(調絃)’에 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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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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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의료보험제도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어 국민들 대부분은 몸(身)에 대해 기본적인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으며 대체로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 제도와 상관없이 언제든 갑자기 몸에 이상이 느껴질 경우 개인적으로 자비를 들여 가까운 곳에서 편리하게 정밀 검진을 받을 수 있어 육체적인 건강에 대한 의료환경은 미국도 부러워할 정도라고 합니다. 

반면에 정신적인 건강에 대해서는 거의 제도화된 검진 제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또한 이런 면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관심해 주변에서 조현병(調絃病) 관련 환자들이 일으키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터질 때만 단지 잠시 관심을 보일 뿐입니다.

그 가까운 사례로 우리는 2018년 마지막 날 참의사의 본보기였던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임세원 교수께서 조울증을 앓던 외래환자를 진료하다 이 환자가 휘두르는 칼에 찔려 별세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었습니다. 참고로 그 직후 ‘임세원법’이 여러 건 발의됐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으나 사실 제도적으로 뾰족한 해결방안도 없이 일상 속에서 곧 망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최근 또 다시 진주에서 꽃다운 나이의 고교생이 꿈도 펴지 못한 채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극소수의 중증(重症) 조현병 환자들의 살인을 포함한 심각한 범죄행위 뉴스를 접하면서도 남의 일인양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 대부분 자기 자신의 마음[心]과 관련된 정신적인 건강에 대한 검진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 들어있는 오월을 맞이해 이번 글에서는 종교를 초월해 인류의 위대한 영적 스승 가운데 한 분으로, 스스로 조현병을 치유한 석가세존께서 거의 인류 최초로 제자들의 조현병을 치료하신 것으로 여겨지는 경전 사례를 포함해 ‘조현(調絃)’에 관해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 조현병(調絃病)이란

서양의학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등장한 정신병원은 초기에는 정신병 환자의 치료보다는 사회로부터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시설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러다 의학자인 필리페 페넬(1745-1826)이 체계적인 병원 관리와 과학적인 임상질병 분류를 통해 정신병 환자를 인도주의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신의학 분야를 새롭게 개척하였습니다. 그 결과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넓은 범위의 정신병을 정상적으로 회복해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는 ‘기분장애’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적인 질병’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후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적 접근이 주류가 되면서 정신적인 질병은 20세기 들어와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 Schizophrenia)’이라는 용어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서양 의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정신분열병’이란 뜻이 담긴 용어를 그대로 번역해 공식적으로 채택해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분열(分裂)’이라는 부정적 표현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줄이기 위해 대한의사협회에서 2011년 3월부터 명칭을 ‘조현병(調絃病)’으로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 조현병 환자란?

이제 ‘조현병 환자’란 누구를 지칭하는지 그 의미를 폭넓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로 ‘조현(調絃)’이란 현악기(絃樂器)의 줄을 조율(調律)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조현병 환자들이란 대체로 마치 악기의 줄을 제대로 조율하지 않고 연주를 할 경우 불협화음을 내는 것처럼, 뇌 신경구조의 결함으로 환각, 망상, 행동 이상 등을 끊임없이 드러내면서 사고장애에 의한 혼란을 겪으며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조현병의 범위를 넓혀 ‘조현증(調絃症)’이란 용어도 병행해 ‘병’이란 부정것적인 표현을 좀 더 완화시키면 좋을 같습니다. 왜냐하면 ‘증세’를 뜻하는 ‘증(症)’이란 한자를 분해해 보면 ‘병이 들다’를 뜻하는 ‘녁(疒)’자와 ‘바르다’ 또는 ‘바로 잡다’를 뜻하는 ‘정(正)’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병의 증세를 파악해 바로 잡는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조현증’이란 용어에는 ‘고칠 수 있다’는 숨은 뜻이 담겨 있어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에게 완치의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 대부분 경미한 조현병 환자의 경우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거의 완치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시기를 놓치면 확실한 치료 방법이 없어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비단 우리 주변에 알려진 조현병 환자들뿐만이 아니라,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냉철히 살펴보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우리들 역시, 아직 그 증세(症勢)가 주위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인지될 만큼 드러나지 않았을 뿐, 대부분 잠재적인 조현증 환자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루라도 일찍 조현증 치료를 시작하면 좋겠지요. 

◇ 석가세존의 조현증 치유 여정

필자의 견해로는 석가세존의 일생을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스스로의 치열한 노력에 의한 조현증 치유 여정과 중생을 위한 조현증 치료 여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나 부러움 없이 성장하다 9살 되던 해 봄날 부친인 정반왕을 따라 국가적인 농경 축제 행사에 참석했다가 겨우내 얼었던 땅을 갈아엎는 농경의식 과정에서 그동안 땅밑에서 잘 살고 있던 벌레가 땅 위로 드러나자 근처에 있던 새가 즉시 날아와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고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왜 서로 먹고 먹히는 걸까?’란 주제에 대해 생애 최초로 깊은 명상에 잠깁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뇌과학에 따르면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의 인식은 뇌의 후두엽 부분이 담당하고 ‘왜’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전두엽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이어서 14살 무렵 ‘사문출유(四門出遊)’, 즉 동문, 서문, 남문 및 북문 밖 나들이를 하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스러운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강렬한 의문[화두(話頭)]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궁중에 머무는 동안 내내 고뇌하게 됩니다. 그러다 목숨을 걸고 이를 해결하기로 결심을 하고 마침내 29세에 덧없는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출가를 합니다. 

그 뒤 6년간의 고행(苦行) 수행과 선정(禪定) 수행 끝에,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생로병사의 의문을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리고는 이들 두 극단적인 수행을 내려놓고 보리수 밑에서 1주일 동안의 철야 정진 수행을 통해 고뇌하던 마음의 조율을 완전히 마치고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얻으며 조현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셨습니다. 

◇ 중생을 위한 조현증 치료 여정

그런데 경전 기록에 따르면 깨달은 직후 그 진리가 오염된 세상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잠시 ‘자살충동(自殺衝動)’이라고도 볼 수 있는, 세상을 떠날까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세존이시여! 아직 때 묻지 않은 중생도 많은데 만일 법을 설하지 않으시고 떠나신다면 저들 역시 진리를 모른 채 덧없이 죽어갈 것이고, 법을 듣는다면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라는 ‘천신(天神)의 간곡한 요청’[범천권청(梵天勸請)]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이 권고를 받아들여 마침내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편 선종사에 따르면 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마하가섭 존자에게 법을 부촉하시면서 선종(禪宗)의 전법(傳法) 전통의 기틀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실 때 “나는 일생 동안 한 글자도 설한 바 없다![일자불설(一字不說)]”라고 하시며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불립문자(不立文字)]”는 유훈(遺訓)을 남기셨습니다. 참고로 세존께서는 사실 49년 동안 다양한 비유들을 포함해 온갖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며, 조현증 환자인 중생들 각각의 증세에 맞추어 이들의 치료에 온 힘을 다하시다 열반(涅槃)에 드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경전에 등장하는 조현병 치료 일화

한편 이런 치료 여정 가운데 세존께서 깨달음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조현증’에 시달리던 몇몇 제자들에게 특별히 ‘조현’이란 표현과 직접 관련된 ‘거문고 줄에 관한 비유’를 들어 불교를 대표하는 핵심 실천 사상 가운데 하나인 양 극단(極端)을 떠난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설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잡아함경>에 들어있는 ‘소나’란 제자를 일깨운 일화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나가 목숨을 걸고 철저히 수행을 지속했지만 끊임없이 망상만 일어나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다. 이를 꿰뚫어 보시고 세존께서 그에게 “너는 출가 전에 무슨 일을 즐겨 했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소나가 “거문고 연주를 즐겼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세존께서, “거문고 줄을 매우 팽팽하게 조이면 소리가 어떠하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소나가 “너무 팽팽하면 째지는 소리가 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세존께서, “반대로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어떠하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소나가 “너무 느슨하면 늘어진 소리가 납니다.”라고 답했다. 마침내 세존께서 “소나야! 네 말대로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거나 그 반대로 너무 느슨해도 멋진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도(道)를 익히는 법도 역시 그와 같느니라. 쾌락에만 탐착하는 일이나 고행만을 추구하는 것은 모두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또한 선정 수행을 조급하게 서두른다고 깨달음의 경지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수행을 너무 느슨하게 한다면 게을러지기 쉽다. 그러므로 소나야! 너무 서두르지도 게으르지도 말도록 해라.”라고 말씀하시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셨다.’ 

◇ 조현증 치유와 뇌과학 

끝으로 뇌과학에 따르면 남이 쓴 글을 읽고, 남이 하는 강연을 듣고, 남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수동적인 일은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이 주로 담당하는 반면에, 스스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창의적이며 능동적인 일은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이 담당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 뇌의 활동과 관련된 특정한 화학물질의 수치를 측정할 수 있는 ‘근적외선 분광법(NIRS)’을 이용해서 실험 참여자들이 위와 같은 능동적인 일에 집중할 때 전두엽을 세밀히 관찰해보았더니, 예상했던 대로 전두엽의 활성화된 특정 부위에서 산소-헤모글로빈의 수치가 훨씬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40여년간의 선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종합한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들 모두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발병한 조현증의 빠른 치유를 위한 지름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눈 뜨자마자 종교를 초월해 매우 효과적인 ‘수식관(數息觀)’[‘향상일로’ 칼럼 첫글 참조]으로 잠에서 막 깨어난 뇌, 특히 전두엽에 산소공급을 충분히 해준 다음, 마칠 무렵 활성화된 전두엽을 작동시켜 오늘 해야 할 가치 있는 시급한 일들을 명료하게 파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신속 정확하면서도 신바람 나게 온몸을 던져 맡은 하루 일과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귀가 후 잠자리에 들기 전 역시 ‘수식관’을 하면서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낮의 일들을 통합적으로 세밀히 살피며 철저히 반성한 다음,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을 위해 숙면(熟眠)을 취하는 것이라 확신하기에 이의 실천을 적극 권해 드립니다. 

한편 증세가 심한 조현병 환자의 경우에는 우선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정밀검진과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상태가 경미한 조현증 수준으로 향상된 다음, 자신과 코드가 맞는 명상 수행법을 바르게 익히며 스스로의 치열한 치유 노력을 통해 정상인으로 복귀하실 것을 적극 추천드립니다. 

끝으로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사실 가족 간에 일어나는 온갖 불협화음도 전두엽의 오작동으로 조현증 증세가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언론에 오르내리는 더 끔찍한 일들이 우리에게 벌어지기 전에 모두 전두엽을 활성화시켜 더 이상의 불효를 짓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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